구치소를 무겁게 짓누르던 마음의 담장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상상하기 어려운 무게의 십자가를 지고 허허로운 삶을 이어오던 사형수들도 이날 만은 잠시 자신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했다. 주님의 부활, 자신들의 새로 남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인 5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담장을 넘으며 무거워진 봄 햇살도 이날만은 부활의 은총에 가볍게 나풀거렸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김성은 신부)가 마련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에 함께한 4명의 사형수들도 덩달아 날아갈듯 한 모습이었다.
하늘색 수의에, 가슴에 단 빨간색 수번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사형수들은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 가운데서 더욱 열정적인 사랑을 토해내는 듯했다. 사형수들과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처음으로 구치소를 찾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염 대주교는 주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마련해주신 잔치의 기쁨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염 대주교는 사형수들과 함께 봉헌한 미사에서 “하느님이 주신 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부활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의 참 자유이며,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대로 살 때 가장 자유롭다”며 사형수들을 위로했다.
아울러 염 대주교는 “사랑할 줄 안다는 것, 사랑을 나눌 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 나와 이웃,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사랑하며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뜻밖의 부활 선물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는 사형수 이 아우구스티노씨는 “하느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이런 자리가 더욱 잘 살아가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 같다”말하며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이어지며 신앙 안에서 성장해가는 것을 느낀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봉사자로 10년째 서울구치소에서 활동해오고 있는 공지영(마리아·51) 작가는 “큰 죄가 있는 곳에 더 큰 은총이 풍성하게 내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며 “사형수 형제들을 만나며 오히려 내가 은총 속에 교화되는 것 같아 기쁨을 얻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천주교 담당 교도관 권남현(젤마노·50·수원교구 포일본당) 교위는 “사형수 형제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신비가 이 담장 안에서도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부활의 은총과 기쁨을 풍성하게 체험한 하루, 구치소의 높은 담장은 어느 새 눈 녹듯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성은 신부와 부위원장 김찬미 신부, 김형태 변호사(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운영위원장), 김경한 전 법무장관 등이 함께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사형수들과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 봉헌
서울구치소에 깃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발행일2013-04-14 [제2841호, 7면]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미사에 함께한 사형수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포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