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성소자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이 최초의 두 사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을 삶으로써 보여준 부모, 박해의 위험이 불 보듯 훤한 사제의 길을 걷게 됐음에도 오히려 기뻐하는 부모의 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골배마실과 수리산, 교구의 품에서 성소의 꿈을 키운 신앙선조들의 성소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대건 신부·최양업 신부
김대건 신부의 집안에 신앙이 뿌리내린 것은 증조부 김진후 때부터다. 김진후와 숙조부 김한현이 순교했을 뿐 아니라 부친 김제준과 김 신부에 이르기까지 4대가 하느님을 위해 순교했다.
선대의 신앙을 이어받은 김제준은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과 견진을 받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김 신부를 사제의 길로 인도했다.
당시 모방 신부는 박해 속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할 조선인 신부를 찾고 있었다. 첫째로 때 묻지 않은 소년이고, 둘째로 천주교 집안이며, 셋째로 깊은 신앙심으로 본인과 그 가족이 사제성소를 희망하고, 넷째로 건강하고 근면한 이를 찾던 모방 신부의 눈에 증조부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앙을 물려받은 김 신부가 띄었다. 김제준은 모방 신부의 어린 김 신부를 사제로 키우기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후에 김제준은 김 신부가 유학을 간 사실이 드러나 혹독한 형벌을 받게 되는데 그는 “서양인을 데려온 것과 자신을 외국에 보낸 것은 모두 천주를 공경해 받들려는 까닭”이라고 고백, 사제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1839년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김 신부가 선발될 당시 최양업 신부는 이미 4개월여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자녀를 성소의 길로 보내는 김 신부와 최 신부의 가정은 어쩐지 닮았다.
최 신부의 가정 역시 대대로 신앙을 물려받은 집안이었다. 특히 회장으로서 교우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던 부친 최경환의 신앙은 최 신부에 큰 영향을 미쳐 훗날 최 신부는 “부친은 언제나 종교와 신심 이외의 것은 말하지 않았다”며 “부친의 말에는 힘이 있고 설복시키는 능력이 있어 모든 이에게 천주의 사랑을 심어줬다”고 회고했다.
모방 신부가 비밀리에 신학생을 선발하고 있을 때 최 신부를 추천하는 이가 있어 최경환을 찾았는데 최경환은 “이것은 저희 뜻이 아니라 천주의 부르심이요 소명”이라며 “집안에 이러한 기쁨이 찾아올 줄은 참으로 몰랐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최경환과 아내 이성례는 최 신부가 나라 밖으로 간 것이 알려져 더욱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옥중 순교했다. 역시 아직 최 신부가 마카오에서 수학 중이던 1839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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