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살피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를 믿으라”는 말씀보다 “나를 따르라”고 이르신 적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문일까요? 교회에는 그분의 팬들이 많습니다. 소위 주님의 팬들은 주님을 ‘좋아’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주님의 자비를 즐기고 주님의 축복을 갈구합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영광과 명성과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속셈을 지닌 것입니다. 물론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릇되다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모든 것을 주님께로부터 공급받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에 의탁하는 순명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당신을 쫓아 동행하며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 우리는 극성맞고 악착같았던 하느님의 ‘광팬’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뒤를 쫓아다니며 적극적으로 복음 선포를 훼방하고 시기하고 모함했던 유다인들의 광기를 딱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주님의 양떼인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사탄의 훼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세상의 영은 언제나 하느님의 영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기억합니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사탄의 영은 언제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한다는 사실을 명심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매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고 또 원하는 마음도 절실합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집결지, 하느님 사랑의 원천인 교회 안에서조차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박해하던 유다인들처럼 주님의 ‘광팬’이 되어 오히려 주님의 뜻을 해치고 주님의 사랑을 훼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팽개친 당신의 ‘팬’들이 수두룩한 이유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꿈이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기도의 주제가 세상의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확인됩니다. 오로지 무병하여 부귀영화를 오래오래 누리기를 청하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원과 청원이 세상 것과 도무지 구별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골머리를 썩이실 것만 같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청원에 ‘우선’적으로 응답하고 싶은 주님의 계획에 차질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러한 모든 세상의 집착들은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마태 6,33)이라고 이르셨다는 걸, 잊으셨는지 따지고 싶습니다. 그분을 구경하며 ‘떡’이나 얻어낼 궁리만 하니, 그 심보와 속셈이 과연 주님 제자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소주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선언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는 곧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이라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광팬’을 원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라 듣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제자가 되라는 이르심이라 믿습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환호하는 ‘팬클럽’이 아니라는 점을 깊이 새깁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자신의 전부를 투신했던 몇 사람의 제자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뜻에 완전히 순명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한 길에서 후회하지도 돌아서지도 않고 계속 도전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 자격은 성당에 등록된 것으로 취득되지 않습니다. 미사에 참례하고 헌금을 봉헌한 것으로 완수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불쑥, 급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여 뭔가를 얻어내는 일은 제자의 직무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분별합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하는 축복을 누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주님을 좋아하는 ‘팬’이 사라지고 성실한 제자들로 채워지기를 간곡히 기도드립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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