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구 후배신부님을 동창신부님 사제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서로 사는 것이 바빠서’라는 핑계로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보지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신부, 잘 있나’ 걱정이 되는 후배신부입니다.
왜냐하면 40대 중반인데도 여전히 순수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은,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부탁에도 혼신을 다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얄팍한 생각은 그 신부가 행여 사람들 때문에, 일 때문에 시간에 쫓겨 힘들어 하지 않나, 방에서 혼자 속 끙끙 앓으며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염려하곤 했습니다. 그런 즈음 만난 자리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함께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본당 신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형, 우리 교구에 계신 원로 신부님 중에 사제 서품 몇 십 주년 축하식 도중에 답사를 하시는데,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 이런 기도를 자주 드렸대. ‘주님,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제가 사제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기도 덕분인지 이렇게 오랫동안 사제로 살았으니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며 남은 생애도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고 싶다고 하셨어.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어. 사실 나도 처음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사제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까마득하고 멀게만 느껴졌어. 그래서 어린 신학생 시절, ‘하느님, 이 다음에 사제가 되어 단 한 번만이라도 거룩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어. 그런데 지금은 사제가 된 지 벌써 15년이 지난거야! 요즘 내 생활을 보면 그 옛날, 단 한 번만이라도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하루하루 시건방진 모습으로 미사를 의무적으로 드리고 있더라. 그래서 그날, 신부님 말씀을 듣고 다시금 정신 차리기로 마음먹었어. 즉, 나의 간절한 꿈을 이루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오늘이 그 옛날 꿈꾸던 단 한 번의 마지막 미사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미사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
많은 이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있을 때는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순간만이라도’하면서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의 과정을 겪은 후, 마침내 그 기도의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설렘, 벅찬 감동은 잊을 수 없는 행복을 줍니다.
하지만 순간의 기억도 중요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하며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 순수했던 시절을 한 번쯤 상기해 보면 어떨까요. 특히 그 시절, 약삭빠른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속아도 속았다 생각하지 않고’, ‘어떠한 일에 걸려 넘어져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던 그 때의 모습, 참 괜찮지 않나요?
어쩌면 바로 ‘단 한 번만이라도’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당시의 마음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긍정의 힘’을 체험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오늘, 순수했던 그 시절, ‘단 한 번만이라도’의 마음을 다시금 상기하며, 그 날의 하루를 만들어가기! 참 좋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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