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천명하고 그러한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들을 고발하여, 인간과 사회의 참된 진보를 보장하는 것이 직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노동 문제는 사회생활에서도, 교회의 가르침에서도 불변의 요소가 됐다.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이 문제에 관해 다시 한 번 거론하는 것은 전보다 더 강조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선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인간의 노동은 사회 문제 전체에 대한 관건, 아니 본질적인 핵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교회는 노동이 인간의 지상 실존에 있어 근본적인 영역이라고 확신한다. 근거는 창세기 맨 첫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이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는 말을 듣는데, 이는 노동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서 인간이 수행할 활동으로서의 노동을 간접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이 땅을 경작하기 시작해 거기서 얻은 것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변형시킬 때 비로소 본래 의미의 ‘땅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현대는 기술을 경제 발전에 작용하는 주요인으로 당연히 평가한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는 바로 인간이 주체라는 점에서 노동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들이 따라다닌다.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노동의 주체가 된다. 인격체로서 인간은 일을 하고 노동 과정에 속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한다.
노동이 고유한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의심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윤리적 가치를 성취하는 것이 인격체며, 의식적이며 자유로운 주체라는 사실과 명백하게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노동이 인간에게 좋은 것은 노동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기완성을 이뤄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더 인간답게’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노동에 관해, 노동의 인간적인 가치와 노동에 속하는 도덕적 질서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의무로 여기며, 이를 복음적 메시지 전체를 전하는 봉사의 중대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작은 부분을 발견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받아들이신 것과 같은 구속의 정신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를 비춰주는 빛으로, 우리는 노동 안에서 항상 새로운 생명의 서광을 발견하고 새로운 선의 서광을 찾는다.
기도하고 일하면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노동이 지상의 진보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발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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