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밝힙니다. 이렇게 우리네 속생각들이 하느님 뜻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솔직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면면을 살피면 도무지 부인할 수가 없다 생각됩니다. 이렇듯 당신의 뜻에서 어긋난 까닭에 엉망진창으로 죄에 얽혀 지내는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 스스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져 탕감시키는 구원프로젝트를 완수하셨습니다. 이제 온 인류에게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것이 되는 은총이 선물된 것입니다(2코린 5,17 참조). 오늘 묵시록에 펼쳐진 “새 하늘과 새 땅”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말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례로써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의 마음이야말로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주님의 것으로 새 단장되었다는 선포라 믿어집니다.
그런데 문득, 오늘 주님께서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는 사실이 유난해 보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당신을 팔아넘기려는 유다의 속셈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하는 만찬자리에서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손수 빵을 적셔서 건네시며 한층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오로지 사랑으로 당신의 뜻에 반대되는 제자의 마음이 돌이켜지기를,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에서 돌아서기를 원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유다의 죄 된 생각을 강제로 꺾어 버리지 않고 억지로 조정하지 않는 사랑의 기다림을 헤아리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느라고 애간장이 녹으실 것이라 어림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날처럼 지금 그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당신을 배신할 인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을 캐게 됩니다. 하여 “사랑의 계명”이 ‘유다를 뺀’ 제자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봅니다. 이야말로 당신의 제자라면 세상이 어떠하든 상대가 어떠하든 상관치 말고 오직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일깨움이라 싶은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걸핏하면 ‘세상의 유다들’에 마음을 쓰는 통에 걸리고 넘어지는 우리 모습이 보였습니다. 늘 ‘유다’와 비교하며 상심하고 ‘교회 안의 유다’에게 마음을 뺏겨 수없이 요동치며 산란해지는 우리 마음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작업입니다. 우리에게서 사랑을 뺏으려는 사탄의 술수입니다. 사탄은 최고의 행복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우리 안에서 사랑을 훔쳐내고 그 자리에 죄를 넣어주기 위해서 무진 애를 씁니다. 이기적이고 편파적인 생각을 쑤셔 넣어 사랑의 관계가 파괴되도록 일을 꾸밉니다. 우리가 지닌 사랑의 능력이 맥을 못 추도록 갖은 수를 부립니다. 더러 행하지 않고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는 일도 틀림없는 사탄의 영역이니, 적극적인 탈출이 필요합니다.
삶은 추상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과 신앙도 결코 추상적일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만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실천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스스로 희생하심으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당신의 피를 쏟고 살을 찢어 우리를 먹이심으로 증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서 피와 살을 나누어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제자들처럼 이웃을 위한 땀과 눈물을 봉헌할 수 있습니다. 그들처럼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재능을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높아지지 않고, 강해지려 하지 않고 세상을 살리셨던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느님과 화해토록 하는 고귀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꺼이 환난까지도 주님의 은총인 줄 깨닫는 믿음의 용사로 살 수 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마음 안에 보배처럼 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께서 넣어주신 당신의 것을 양껏 꺼내어 후하게 사용할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새겨진 주님의 것을 키우고 경작하여 사랑을 살아내는 기쁨이야말로 ‘유다를 뺀’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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