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의 고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친교와 친밀함의 표현이었다. 즉 식사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것은 신뢰와 수용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당시에 이 ‘식탁 친교’(Table fellowship)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위계질서(hierarchy)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초대된 손님에게 주어진 음식은 그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은 어떤 바리사이 지도자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루카 14,1) 예수님은 초대받은 이들이 어떻게 윗자리를 선택하는지를 바라보셨다.(루카 14,7) 그들의 엘리트 의식(elitism)을 관찰하시고 예수님은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식사에 초대하고 다시 그들로부터 초대의 보답을 받는” 당시의 관행에 도전하신다. 오히려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이들을 잔치에 초대하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은 식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거룩함의 에토스’(ethos of holiness)와 ‘정결의 정치학’(politics of purity)에 도전하신다. 왜냐하면 이것은 배제와 제외를 가장 큰 특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거룩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이들은 식탁 친교에서 배제되고 제외되어야 했다. 여기에서 하느님 창조물의 풍부함은 엘리트들에 의해 잘못 다루어지고 조작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간주되었던 이들을 당신과의 식탁 친교 안에 포함시키고 포용하신다.
예수님의 식탁 공동체는 ‘관용’(tolerance)의 방법이었다. 그러한 예수님에 대하여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투덜거렸다.(루카 15,2)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하고 말한다.”(마태 11,19)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에게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요?”(마태 9,11)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대답하신다. 자비를 찾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배제와 제외를 특징으로 하는 엘리트 구조에 도전하고, 포용과 관대함으로 관계를 회복하고 나눔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대함’(generosity)을 통하여 하느님 창조물의 살림과 나눔을 실천하셨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을 증언한다. 그분은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초대되고 받아들여지는 잔치를 원하신다.
당시 유다인들처럼 오늘의 우리에게도 식사는 일상의 가장 친근한 자리이다. 이 식탁 공동체에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초대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우리 일상생활의 중심에 두라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에 따르면 다시 되돌려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관대함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행복을 위한 열쇠이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루카 14,14) 따라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초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버거운 의무가 아니라 생명을 함께 나누는 삶의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의 식탁 친교는 참된 제자 되기를 위한 하나의 ‘은유’(metaphor)이다.
오늘의 제자들은 식탁 친교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행동을 실천하도록 초대받는다. 우리는 세상의 가난한 이들의 배고픔에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우선적으로 식탁 친교에 초대해야 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에 대한 뒤따르기의 진정성이 드러날 것이다.
배제와 제외를 특징으로 하는 오늘의 죽음의 문화에 도전하여 포용과 관대함의 식탁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은 예수님의 살림과 나눔의 대안을 실천하는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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