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종신직이다. 기본적으로 콘클라베를 거쳐 교황으로 선출된 후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교황직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사임을 결정하면서, 교황직의 무게와 교황의 인간적 면모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콘클라베와 교황, 바티칸과 바티칸 밖의 사회, 교황직 너머에 있는 인간적 고뇌 등을 접점으로 하는 두 영화를 소개한다.
▧ 교황으로 선출된다는 것
5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원제 하베무스 파팜/102분)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이후의 영화사에 정점을 찍고 있다는 평을 받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다.
감독의 특징대로 하나의 장르로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이 영화는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 추기경이 교황직의 중압감에 인간적 두려움을 갖는 커다란 줄기에서 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투표 과정인 콘클라베가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콘클라베를 통해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도 점쳐진다’ 등의 대사를 말하며, 오늘날 교회 내 다양한 변화들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그려낸다.
1968년 제작된 영화 ‘어부의 신발’(The shoes of the fisherman/감독 마이클 앤더슨/162분/DVD)에서도 콘클라베 과정과 교황직의 중압감을 찾아볼 수 있다. ‘103592R’ 정치범으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던 우크라이나 키릴 라코타 대주교가 석방된 후 추기경이 되고 다시 교황이 된다는 줄거리다.
두 영화는 다른 시대의 바티칸을 보여준다. 콘클라베가 진행되고 시스티나성당에 검은 연기와 흰 연기가 올라가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베드로광장에 모인 신자들의 모습과 옷차림은 사뭇 다르다. ‘어부의 신발’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기 전에 제작된 터라 우크라이나 대주교가 교황이 됐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줄거리 전개나, 리라 단위를 쓰는 이탈리아, 누가 교황이 될 것인가를 예측하며 ‘분명 이탈리아 사람이겠지요’라고 박장대소하는, 당시 회자됐던 유머도 찾아볼 수 있다.
▧ 교황의 인간적 면모
두 영화는 교황직에 가려진 교황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콘클라베 장면에서 추기경들이 ‘저는 아니라고 해 주소서’하며 기도하는 장면이나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 추기경이 교황직의 중압감에 고뇌하는 모습은 우리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하느님께 ‘제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활기차고 강력하게 큰 과업을 맡을, 젊고 나은 후보들이 있습니다’하고 기도했다”고 외신들에게 고백한 인간적 면모와 유머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 신자들을 보살피고 보편교회의 수장으로서 바티칸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어부의 신발’에서 키릴은 교황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간곡히 사양한다. 당시는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갈등 속에서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고, 바티칸이 사랑의 윤리로 이를 감싸 안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키릴은 교황이 되지만 ‘관리 받는 느낌이 싫다’ ‘나는 재능에 비해 너무 높이 앉아있는 낮은 자’라는 말을 하며 교황직의 무거움을 내비춘다.
두 영화의 교황은 결국 몰래 거리로 나선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멜빌 추기경은 버스를 타고, 바티칸 거리의 악사들을 보며 즐거워 한다. 수단을 입고 로마로 나선 ‘어부의 신발’ 키릴 교황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음이 듣고 싶었어요. 그런 게 그리웠어요”하고 고백한다.
두 영화의 결말은 다르다. 하지만 교황직의 중압감에 대해 고뇌하고, 교황이기 이전 하나의 인간에 대해 조명하는 것만큼은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바티칸의 위엄과 신비로움에 집중했다면, 최근 바티칸의 친숙함과 인간적 면모에 더욱 주목하는 것은 공감대를 이루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어부의 신발’에서 한 추기경은 교황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좋든 싫든 교황님은 고독한 순례여행을 선고 받았습니다. 갈바리아 언덕을 교황님은 지금 막 오르고 계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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