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실. 유아와 유아를 둔 부모들을 위해 성당에 마련된 공간이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성당에 유아실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유아와 부모를 위한 유아실. 정말로 유아를 위한 배려일까.
유아실의 구조에서는 유아와 부모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들다. 유아실은 대부분 성당의 맨 뒤편 가장자리, 즉 제대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자리한다. 그나마도 신자들이나 기둥에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유리벽으로 막힌 유아실은 미사전례를 스피커에 의존한다.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과는 엄연히 분리된 다른 공간이다. 또 유아실이란 명칭에 무색하게 정작 수유, 기저귀교체를 위한 편의공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아실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다만 역사가 오랜 성당에는 유아실이 없었다는 점만을 알 수 있다. 사실 유아실은 외국 성당에서는 생소한 우리나라만의 풍경이다. 김정신(스테파노·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아실은 편의주의에서 나온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상”이라며 “꼭 필요한 것이라면 전례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유아실이 유아신앙교육에 저해된다고 우려한다. 특히 3~6세 사이의 유아는 지각(知覺)적 사고,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학습하게 되는데 이때 식성·습관 등이 형성돼 유아실 분위기에만 익숙해진 유아는 성당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아실의 구조는 미사의 의미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미사에 공동체와 유아·부모를 따로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 박종수 신부는 “외국의 미사에는 어린 유아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하나 되는 가톨릭공동체의 모습”이라며 “공동체에서 유아를 분리시키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유아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지만 유아실 문화에 익숙해진 신자들에게 유아실 없는 미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하다. 8개월 된 자녀와 유아실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김윤수(프란치스코·29)씨는 “시끄럽고 신부님도 보이지 않아 미사 드리는 것 같지 않지만, 아이와 함께 미사 드리려고 유아실을 찾는다”며 “유아실이 없으면 주변에 폐를 끼칠 것 같아 성당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유아실 없는 미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으로 서울 무악재본당(주임 조재연 신부)은 2009년부터 유아실 없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소음을 걱정하는 신자들도 많았지만 떠들거나 우는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미사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소음을 나무라지 않는 사제와 신자들의 배려, 부모의 교육으로 유아실 없는 미사를 실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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