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간을 7일 단위로 생활하고 주일마다 휴식을 취하게 된 때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일주일과 정기휴일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천주교가 들어오면서부터다. 우리나라에 ‘일요일’이 생기기 100여 년 전인 그때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아직 ‘주일’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던 무렵에도 선조들은 주일을 지키려 노력했다. 성호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의 기록을 보면 1770년 천주교 서적에서 7일마다 축일이 온다는 기록을 읽은 홍유한은 매달 7, 14, 21, 28일에는 일을 쉬고 기도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784년 확실한 주일의 용어와 개념이 전파돼 선조들은 박해시대에도 전례력에 따른 주일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선조들에게도 역시 주일은 휴식과 기도, 선행 실천의 날이었다. 선조들은 이 휴식을 ‘파공(罷工)’이라고 부르며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미사전례에 참여했다. 그러나 박해로 미사를 드리기 어려웠던 신자들은 기도문을 ‘대신 외우며’(代誦) 주일을 보냈다. 「천주성교공과」에는 특정 축일이나 주일미사의 대송으로 해당 축일에 정해진 기도를 드리고 기도서가 없는 경우 ‘십자가의 길’을, ‘십자가의 길’도 바치기 어려우면 ‘주님의 기도’ 33번을 마치도록 했다. 또 글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보고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신자들은 주일마다 비신자들에게 미행당하지 않으려고 은밀하게 집을 돌아가며 모여 기도했다. 성 베르뇌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에 “신자들은 주일에 주교가 명한 기도를 낮은 목소리로 외고 그날 복음의 해석을 듣는다”며 “나머지 시간은 묵주신공을 하고 교리문답을 배우며 아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데 보낸다”고 기록했다.
선행도 주일의 덕목이었다. 1780년대 후반 원시보(야고보)는 주일과 축일에는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사람들을 불러 나눠 먹었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오늘은 주님의 날이니 거룩한 기쁨으로 지내야 하고, 또 천주께서 주신 재산을 나눔으로써 그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주일을 통해 선행을 실천하고 신앙을 전파하던 그는 인근 지역에 널리 알려지면서 체포돼 결국 1799년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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