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중국 가톨릭교회의 가장 저명한 인물이자 논란이 돼 왔던 진루시엔(金魯賢, 사진) 주교가 4월 27일 췌장암으로 선종했다. 향년 96세.
진 주교는 교황청과 중국 정부 양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양측의 중재 역할도 적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초, 18년간의 감금 생활 끝에 중국 정부에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풀려났다.
예수회 소속 마이클 켈리 신부는 아시아 가톨릭 통신사인 유캔(UCA News)과의 인터뷰를 통해 “1980년대부터 진 주교는 정부의 권한에 대한 인정, 그리고 자신이 중국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믿는 바에 대한 충성의 사이에서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켈리 신부에 따르면 진 주교는 “중국에 그동안 세 차례 그리스도교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탄압과 선교사의 축출로 끝났다”며 “매번 또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오곤 했는데, 네 번째 똑같은 일이 생기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은 진 주교로 하여금 중국교회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면서도, 다소의 회의적인 시선과 논란의 인물로 여겨지게 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1985년 주교 수품 뒤에는 중국 정부의 간섭을 억제하면서 교황청에 가까운 입장을 보여왔다.
1916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진 주교는 1945년 예수회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학한 뒤 1951년 귀국했다. 1955년 공산 정부에 의해 체포돼 18년 동안 수감됐고, 9년 동안 노동개조사업에 동원됐다가 1982년 석방됐다.
이후 상하이교구 내에서 신학교, 피정의 집, 출판사 등을 세웠다. 그는 처음에는 이른바 애국회에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애국회와 함께 일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고 한 서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진 주교는 1984년 가을 상하이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으나 당시 교황청의 승인이 없는 상태였다. 1989년에는 상하이교구장으로 임명됐지만 여전히 교황청과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에 와서야 진 주교에 대한 교황청의 인정이 이뤄졌다.
4월 30일자로 교황청 국무원이 발표한 성명은 “진 주교의 인도로 상하이교구는 크게 발전했다”며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면서도 조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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