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며 부활 7주간을 맞이합니다. 사순시기 동안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주님의 십자가 달리심과 죽으심에 동참했던 기억이 이리 선연한데 벌써 여섯 주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동안 단식하고 금육하며 고행하였고 수난과 관계된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아팠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사랑이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으셨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동일인입니다. 더욱이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거푸 듣는 셈입니다. 루카 사도는 그날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모두 이루신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을 축복하시며 들려주신 마지막 당부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다고 적은 반면, 복음서에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하기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곧 그 자리에 머무르는 일일 테니 흠잡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자들이 주님의 당부를 ‘말씀대로’ 따랐다는 점, 곧이곧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지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딴지를 걸기 일쑤였습니다. 주님의 부활 예고마저도 귓전으로 흘렸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분명하게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라던 말씀도 싹 무시했습니다. 오죽이나 답답하면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말씀하신 대로”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고,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음에도 허사였습니다. 풀이 죽어 귀향을 결정하였고 고작 고기를 잡겠다며 우루루 몰려다녔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딴 짓에만 골몰했던 겁니다. 그랬던 그들이 오늘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에 “크게 기뻐하며” 굳건히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부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셨습니다. 드디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부활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의 제자인 우리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지낼 것을 명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예루살렘은 주님을 모시는 마음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당신 사랑을 전하는 기쁨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직무”를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듯 한시적인 땅의 삶을 살아가기에 주님께서 가신 그곳을 사모합니다. 천년만년 이 땅에서 살 것처럼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벌써 십자가 고난 묵상에 심취했던 마음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사순의 은총은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는 결단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이 때문에 십자가 없는 부활을 꿈꿉니다. 땅에서의 성공과 영광만 고대합니다. 온 종일 “고기 잡으러” 갈 궁리만 하고 지냅니다. 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음미하는 구경꾼의 모습입니다. 교회 행사의 관람객에 불과했다는 방증입니다. 참으로 불손하게 예수님의 죽음을 매우 당연한, 마땅한 결과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는 죄임을 기억하지 않는 결과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갈라 2,20-21 참조).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마흔 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흩어진 믿음을 동여 주시느라 무지무지 애를 쓰셨습니다. 기죽은 제자를 엠마오 길에서 챙기시고 “티베리아스 호수”에서는 제자들의 아침 식사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아,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헛걸음마저도 은총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둘러 둘러 멀리 돌아서 딴 짓을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믿음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믿음이란 매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고난과 핍박의 예루살렘을 지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삶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하늘을 쳐다보며 하릴없는 감상에 젖어드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마음마다 주님의 예루살렘이 우뚝하기를 열망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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