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각가는 하느님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직업일지도 모른다. 형상(形象)을 만들기 때문이다. 깎고 쪼고 다듬는 과정은 먼지와 소음, 시간과의 사투다. 하지만 진통을 겪고 출산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여러 미술 분야 가운데서도 각광을 받지 못하는 ‘조각’에 평생을 바칠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조각가 한진섭(요셉)씨는 지난해에 이어 예술의 전당 ‘서울 국제조각페스타 2013’ 총감독을 맡았다. 그와 동료 조각가들이 이러한 행사를 마련한 것은 조각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좀 더 친근하게 조각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그의 작품에는 무엇보다도 친근함이 묻어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웃는 소의 모습은 소가 끄는 짐수레를 타고 놀았던 그의 유년시절의 미안함이 담겨있다. 작품 제목은 ‘휴식’. 짐수레를 끌었던 소에게 이제와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소는 매번 짐수레를 끌고 다녀야 하나, 소 입장에서는 수레에 타고 싶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일만 하는 소가 아니라 오토바이 위에서 편안히 쉬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요. 오토바이의 손잡이는 사람들이 직접 돌릴 수 있도록 돌아가게 만들어 보았지요.”
2005년 한 제과업체의 의뢰를 받아 ‘해태’ 암수 한 쌍을 조각하면서 시작된 동물에 대한 관심은 2년 동안 동물에 대한 연구를 거쳐 2007년 개인전인 ‘동물나라전’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존, 따스함이 신앙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1981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던 당시에는 작품에 면과 모서리가 많았지만, 신앙을 알게 된 후 작품들이 둥글게 변한 것 같기도 하다고 고백한다.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만지지 마세요’라는 간판을 떼어내고, 조각을 생활 속에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친근감을 불어넣었다. 기능적인 공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과감히 도전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다.
“하느님은 작품의 소재를 찾는 것부터 구상과 제작 등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매순간 기도를 하고 느끼는 것이지만, 하느님은 항상 제 능력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는 평생 조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을 신앙에서 찾았다. 꾸준히 성물창작 작업을 계속해오면서, 미술사학자인 아내 고종희 교수(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의 성인전 탈고에 맞춰 성인상들을 조각해보고 싶다는 희망도 생겼다. 성물을 바라보면서 사명감을 느끼는 조각가, ‘돌’이라는 차가운 소재를 어느 소재보다도 따뜻하게 만들어내는 그의 손이 굵고 투박하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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