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앵거스에 대한 첫인상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모습이었다. 길게 드리운 백발과 흰 눈썹을 하고 부드럽게 미소를 띠고 있던 모습은 판타지 영화에 나올법한 신비스러운 인물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매너 좋고 깔끔한 그의 성격은 군더더기 없는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300점이 넘는 여러 작품 중에서도 그의 출생지이기도 한 영국 배스의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리스도교 상징을 제시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36년 시작된 영국 배스의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 건축은 네비브만 완성된 상태에서 1939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교회는 전쟁 후에 새롭게 재건되지만 교회 동쪽의 벽면에 대한 계획은 1979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건축가인 존 비비안(John Vivian)은 마크 앵거스에게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의뢰하여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마크 앵거스는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의 동쪽 창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작가의 개인적인 상징을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 동쪽 벽면에는 제대 위에 십자형 창과 그 위쪽으로 7개의 창이 놓여있다. 앵거스는 제대 위쪽에 그리스도교의 가장 궁극적인 상징으로 존재하는 십자형의 창문을 중심 지점으로 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십자고상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넣지 않고 비어있는 십자가를 제시하고자 했고,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부활의 실재를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로 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과 성령의 힘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에워싸인 제대 위편 십자형 창에는 예수수난을 나타내는 오상이 못이 지나가는 다섯 개의 작은 원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십자가 윗부분에는 가시관을 암시하는 뾰족한 선들을 그려 넣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상징하는 십자형 창의 보라색은 위편에 놓인 일곱 개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보라색 빛으로 연결되며 천국에 이르는 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동쪽 벽면 상단에 위치한 일곱 개의 창은 가톨릭의 하느님이 창조하신 일곱 날을 상징하기도 하고 가톨릭의 7성사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중앙의 3개의 창을 에워싼 금색의 띠는 마치 결혼반지가 끼워진 모습처럼 약속으로 맺어진 공동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앵거스의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색채의 상징과 작가가 새로이 창조해낸 현대적인 그리스도교 도상들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추상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구체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암호를 풀 듯 마주하게 되는 그의 창은 이를 마주 대하는 사람들과 개별적인 차원의 관계를 형성하며 그 해석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그의 창에 제시된 색, 빛과 상징들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신비를 보다 깊이 체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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