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인지 작물들은 ‘쑥쑥’ 컸다. 그 사이 날씨가 좋아서 그렇단다. 볕도 좋았고, 시의 적절하게 비도 내려줬기 때문. 아직까지 거름도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잘 자란 것을 보면 자연만큼 좋은 거름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감자는 싹이 나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탓에 큰 줄기만 남기고 곁가지는 솎아 줬다. 그새 식구들도 늘었다. 가지와 호박, 당근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지대에 의지해 반듯하게 자란 콩은 꽃을 피웠다. 처음으로 보는 하얀 콩꽃은 예쁘고 신기했다.
시농제 때 심은 상추잎은 벌써 손바닥만 해졌다. 영연씨가 “신선하고 맛있다”며 상추를 따가라고 했다. 집에 가서 효녀 노릇이나 해볼 요량으로 상추잎에 손을 댔다. 촉촉한 것이 묘한 기분이 들더니, 따는 순간의 명쾌한 소리는 농사의 참맛을 알려줬다. 얼마 전 홍대텃밭 ‘다리’에서 진행하는 농부학교에서 배운 ‘잣소스’를 만들어 상추와 몇 가지 채소를 곁들여 샐러드를 해먹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여섯 번째 농부학교에서는 ‘내손으로 만들어 쓰는 퇴비’를 주제로 안산바람들이 농장 최재현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론 수업 후 옥상텃밭에서 실습이 이뤄졌다. 음식물쓰레기와 깻묵(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액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통풍이 되도록 구멍을 뚫은 큰 고무통에 깻묵과 톱밥을 담은 마대자루를 넣고 물을 가득 채우면 깻묵 액비 완성! 그렇게 6개월 이상을 숙성시켜야 한다.
음식물쓰레기 퇴비도 역시 마찬가지다. 톱밥과 음식물쓰레기, 한약재 등을 차례로 넣고 적당한 수분을 공급한 뒤에 숙성시켜야 한다. 최 선생님 말이, 액비가 완성되면 절대로 원액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얼마나 독한지 작물들이 죽는단다. 물과 5대1 비율로 희석해서 작물과 작물 사이에 뿌려주는 것이 농사의 정석이라고 했다. 더불어 깻묵 액비는 악취가 심해서 집에서 실습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농부학교 수업 후, 영연씨가 준비해 놓은 예쁜 나무상자에 고추와 양배추, 브로콜리 등을 더 심었다. 열심히 삽질을 하고, 흙을 골랐더니 손가락이 새까맣게 됐다. 지저분하다는 생각보다는 농사를 한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다음 번에 오면 파란 고추가 모습을 드러내있을 것 같다.
※도움 주신 단체 :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소년문화사목부, 여성환경연대
▲ 게으른 농부의 사랑을 대신한 적절한 일조량과 시원한 비 덕분에 작물들이 쑥쑥 자라났다.
◆ 도시농부의 팁(Tip)!
☆ 초보 농부는 상자텃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작물을 심을 때, 저절로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농사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작은 공간에서 많은 수확물을 내겠다고 작물을 바투 심으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작물을 심었더라도 솎아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농부의 손길이 많이 갈수록 작물은 아이들처럼 쑥쑥 크는 법이다.
☆ 옥상텃밭은 햇볕을 바로 쬐기 때문에 작물들에게 좋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기온이 올라갈수록 텃밭의 수분증발이 금세 증발된다는 단점도 있어, 수분조절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마른 흙만 보고 대량의 수분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 겉은 말랐어도 텃밭 안쪽의 흙에는 수분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물을 많이 줬다가 작물이 썩을 수도 있다. 참고로, 물은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주는 것이 좋다.
☆ 작물이 ‘쑥쑥’ 자라기 위해서는 ‘거름’은 꼭 필요한 영양제와 같다. 거름에는 음식물찌꺼기부터 인변까지 이미 익숙한 퇴비와 쌀뜨물, 깻묵 등을 사용한 액비, 아카시아 꽃과 솔, 칡으로 만드는 효소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옥상텃밭과 상자텃밭에는 ‘액비’가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