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가지 계명들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주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는 셋째 계명은 “네 생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너의 삶이 일과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가장 인간적인 계명”으로 풀이한다. 계명을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곤란하겠지만,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6계명도 아주 쿨(cool)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유머가 없다면 신앙은 삶에서 멀어지고 가혹해진다며, 먼저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나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을 위해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를 가져왔소. 먼저 좋은 소식부터 얘기하리다. 하느님과 흥정한 끝에 계명을 열 가지만 지키는 걸로 합의를 보았소. 나쁜 소식은 여섯째 계명이 그 열 가지 안에 여전히 있다는 거요.”
“여섯째 계명은 지독히 낭만적인 계명이다. 관계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과 신의가 얼마나 쉽사리 무너지는지를 알면서도 두 사람의 끝없는 사랑을 끈질기게 꿈꾼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길 십계명을 ‘자유의 계명’으로 새롭고 즐겁게 느끼게 해준 두 저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윤선아씨의 독일어 번역도 매끄럽다.
“오(5)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 세례를 받으려고 주요 기도와 십계명을 달달 외우던 유년시절, “그러면 ‘가는’ 사람은 죽여도 되나?”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추억과 단체 관람한 영화 ‘십계’의 명장면들도 떠오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겉으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아도, 불완전하고 미약한 너희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인간이다.”
여섯째 계명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년시절 성당은 우리 집이었다”는 볼프 아빠스의 말에 동의하며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성당이었다”고 맞장구를 치고 싶다.
“신앙은 구속이 아니고, 가톨릭교회는 금령을 내리는 제도가 아니다. 십계명은 좀약과 함께 상자에 넣어 골방에 처박아둘 겨울 외투가 아니다.”
저자의 당부대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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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과 한바탕 싸웠다. ‘주님, 휴가나 즐기러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중국 정부가 문을 열기를 원하신다면 어떻게든 힘을 써 주셔야죠. 저야 내일이라도 당장 돌아가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었다! 느닷없이 여행 허가증이 발급되고 일이 한 걸음 진척되었다. 영원히 닫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내가 내뱉은 것은 말하자면 자포자기한 마음에서 나온 유머였다. 그런데 그 유머가 통했다. 유머는 하느님께서 가지신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다. 하느님은 유머를 좋아하신다. 인간의 유별난 구석까지 감내하려면 아마도 유머가 많이 필요하실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에 대한 일이라면 유머는 늘 유용하다.
- 본문 58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