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구 후배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먼저 예전 경상도지역 천주교 교우촌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은 대뜸 부모님 고향이 그곳이며 자기도 어릴 때 그곳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교우촌에서 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적감동이 커서 그런지 ‘고향이 교우촌’이라는 그 신부님 말에 기쁨과 함께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교우촌에서의 생활을 좀 자세히 들려 달라고 했더니 신부님은 어린 시절 자신의 신앙 경험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형, 우리집은 식구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모여 앉아 ‘조과, 만과’를 바쳤어. 하기야 그때는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었어. 먹고 살려면 할 수 없이 기도를 꼭 해야만 했지. 날마다 묵주기도는 기본이었고, 한 달에 한 번 공소로 신부님이 미사 드리러 오시면 공소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어. 어린 우리는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공소 미사에 갔었지. 정말 까마득한 이야기지만!”
“그랬구나. 동네 분들이 다 천주교 신자라면 경조사 역시 함께 치렀겠네?”
“어, 그랬어. 동네사람들이 다 천주교 신자이다보니 특히 동네 분이 돌아가시면 집집이 함께 모여 연도를 바쳤어. 어린 내가 뭘 알겠어. 아버지 손에 끌려서 초상집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니 했었지. 그런데 지금에 와서 어렴풋이 생각해보면, 연도를 바칠 때 그 애잔한 연도 음률도 그렇지만 연도를 임하는 자세가 달랐던 것 같아. 연도를 바치는 분들 모두가 돌아가신 분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망자’의 마음과 하나가 돼, 즉 망자가 하느님께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처지를 굽어 살펴봐달라는 애끓는 탄원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기도를 하는 것 같았어. 예를 들어 ‘성 마리아, 망자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기도는 하지만 결국은 연도자들 모두가 고스란히 망자가 돼 ‘성 마리아, 지금 죽은 나 자신을 위해서 제발 간절히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애타는 이 마음을 전해주소서’하고 기도를 바치는 거였어. ‘망자가 하고 싶은 기도’를 망자가 지금 할 수 없으니 연도자들이 ‘망자’가 돼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 그런 마음에서 기도를 해서 그런 지 연도가 끝나면 죽음이 뭔지 모르는 어린 나까지도 비록 죽음 앞이지만 왠지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속이 후련한 느낌이 드는 거야. 연도 바칠 때 느꼈던 그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요즘 본당 신자 분들이랑 연도를 바치러 가면 끝내고 돌아올 때 혼자 좀 실망하기도 해. 음…, 뭐라고 할까? 기도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그런 느낌?”
연도에 대해 비록 그 신부님의 어린 시절 느낀 점이라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교우촌 전통’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신앙 안에서 하느님과 직접적으로 만나고자 했고, 교우의 죽음 앞에서 망자의 입장이 돼 애끓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기도 드려주는 모습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신앙의 무형 유산’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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