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던 막막한 과부의 심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피맺힌 넋두리를 들려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1독서가 전하는 애끓는 어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눈앞이 캄캄한 고통 중에 오히려 자신의 죄를 기억하며 몸부림치는 모성, 울음소리마저 삼키는 처절한 어머니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엘리야 예언자를 유독 “사렙타의 과부에게” 파견하신 하느님의 뜻이 살펴집니다. 하 많은 이들 가운데 특별히 나인의 과부 아들만 되살려주신 까닭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 때,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이방인 사렙타 과부의 배고픈 기도에 응답하여 엘리야 예언자를 파견하신 것이라 깨닫습니다. 나인의 과부가 아들을 잃고 절망하는 탄식을 귀여겨 들으셨던 것이라 헤아립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그날 그 시간 하필이면 그 장소를 지나시며 “울지 마라”고 위로하시고 아들을 되살려 주신 것이라 믿어집니다.
우리는 사렙타 과부의 아들이 무슨 병을 앓다 죽음에 이르렀는지, 나인의 과부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다만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타에 머물던 중에 발병하였으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삼년 동안이나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게 했던 막강 예언자 엘리야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에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하느님께서 실수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하실 것이면서 굳이 사람을 앓게 하고 죽게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의아해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모든 악을 물리치지 않았는지, 왜 아픔을 깡그리 치워내 줄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아쉬워합니다.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쪽을 택하셨다는 진리를 외면하는 우를 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님께서는 두 과부의 처지를 통해서 우리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통의 신비를 들추어 더듬어 나가도록 이끌고 계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매일 바치는 우리의 기도에 얼마나 진실한 이웃 사랑이 스며있는지, 과연 이웃의 울음과 아픔에 예민하여 그들을 돕겠다는 열망을 지니고 기도하는지 살피라는 이르심이라 받아 들입니다.
오늘 세상에도 그 때처럼 지닌 것이라곤 한 줌의 밀가루 밖에 갖지 못한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 허다합니다. 험한 세파에 시달려 죽음을 향해 치닫는 병든 영혼이 수 없이 많습니다.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희망을 뒤로 한 채 멸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설사 하느님을 모르고 교회를 모르더라도, 사랑을 모르고 희생을 모르더라도 그들의 하소연을 기도로 받아 응답하시는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하늘을 향해서 하소연하고 땅을 원망하던 병든 마음들이 모두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하게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의 고픔을 채워주고 그들의 아픔을 치워내며 그들의 고통을 싸매줄 것을 명하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질 환란과 고통의 늪에서 세상을 돌보아주기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능력으로 곳곳의 상처입어 앓는 이웃들에게 당신의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울음마저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가엾은 이웃들에게 가득가득 사랑을 담아 전하는 하늘의 응답이 되라 하십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소원하십니다.
주님의 측은지심이 온 땅에 그득한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세상의 죽음을 없애지 않고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그분 사랑에 천지가 화답하는 은혜의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께로부터 생성된 숨결로 온 세상을 되살리는 축복의 사명이 있습니다. 진리에 목마른 세상에 주님의 생수를 퍼부을 임무가 있습니다. 그분의 눈빛과 그분의 언어와 그분의 자태를 배워 익히면 좋겠습니다. 하여 세상에 ‘참 생명’을 전하는 우리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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