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자(체칠리아·80·평택대리구 기산본당) 여사가 고사리 손으로 처음 오르간을 연주한 것이 벌써 6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김 여사는 한 번도 연주를 멈춘 적이 없다. 아름다운 연주로 지금까지도 매주 수요일 기산본당 평일미사를 책임지고 있는 그다.
한국전쟁 직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교육자였던 부모님 덕분에 김 여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김 여사의 남다른 재능은 일찍부터 다른 이들의 귀를 황홀케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개신교회에서 반주를 시작했고,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쌓여 결국 그를 음악인의 길로 인도했다.
김 여사는 서울대 음대에 입학해 피아노를 전공했다. 학업에 매진하면서도 그는 교회에서의 반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성가 반주를 하면 행복했던 것이 전부다. 졸업 후,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지만 역시나 반주 봉사는 계속했다. 그렇게 거쳐 간 본당이 서울 신당동, 여의도, 대치동, 대구 지좌, 수원 율전동, 병점, 기산 등 일곱 곳이다. 미국에 8년 간 머물렀던 시절조차 한인본당에서 봉사를 했다.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가 반주를 한 셈이다. 전공 악기도 아닌 오르간이 생소할 법도 한데, 그는 이상하게도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이 좋았다. 특히나 성당에서의 연주는 더욱 즐거웠다.
“오르간은 사랑스러운 악기예요. 연주하고 있으면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오르간에 대한 애정이 컸던 만큼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다. 50대라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종교음악연구소에서 레슨을 받았다. 운도 좋았다. 성가 ‘주님은 나의 목자’를 작곡한 구명림 수녀를 경북 김천에서 만나 개인 레슨을 받았다. 수원 지역으로 이사 온 후에도 대구까지 내려갈 정도로 그는 열성적이었다. 그는 남편과 자녀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열성과 가족들의 지원 덕분일까? 그는 80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르간을 연주한다. 시간이 쌓인 만큼 그의 연주 실력도 쌓여, 지금은 여느 오르가니스트의 연주 못지않을 정도다. 미사 중 영성체 후 묵상 시간의 짧은 연주는 기산성당을 작은 음악회장으로 변신시키곤 한다. 본당 한만삼 주임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모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감상을 할 정도다.
하루도 연주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는 김씨는 작은 바람이 있다. “제 연주를 많은 분들이 주님께 마음이 향하고 감동받으시길 바라요. 또한 건강하게 살면서 계속 봉사를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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