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성경이 선택한 단어가 과장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다윗에게 “주님의 말씀을 무시했다”고 지적하신 일도 그리 들립니다. 유감입니다. 우리들이 설령 죄에 빠진다 하더라도 결코 주님을 무시하려는 의도에서 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 시몬의 경우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듯 합니다. 기껏 초청한 손님을 환대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예절마저 묵살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무시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서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입을 맞추며 반기지도 않고 기름을 부어 발라주는 격식을 생략했던 바리사이의 행위를 ‘무시했다’고 질책하지 않으신 주님의 여유로움이 돋보입니다. 상대에게 하대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식사 자리에 함께하신 주님의 넉넉함이 멋집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식사를 제공했던 바리사이 시몬이 아니라 ‘이름 모를 여자’라는 걸 예감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곧 나타나 체면 따위를 내던진 채, 용감하게 자신의 허물을 눈물로 회개할 그 여자를 기다리셨던 것은 아닐까요? 남의 식탁에 불쑥 나타나서 분위기를 망쳐버릴 여자,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소문난 죄인의 걸음을 강력히 이끌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오직 변화되어 새 삶을 살게 되기를 열망하는 여자의 원의를 꼭 붙들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지친 여행길,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죄 많은 여인에게 생명수를 선물하시며 그것이 곧 당신의 양식이라 선언하신 그날처럼 그렇게 죄인을 구원하는 기쁨의 식탁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이 말은 어느 누구나 회개하기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 용서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할 때에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고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변화의 요건이 너무나 쉽고 간단해서 시시해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참으로 무시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죄만 꼬집어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다윗의 허물을 지적하기에 앞서 다윗이 누렸던 많은 축복이 당신께서 주신 것임을 일러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랐다면 얼마든지 더 보태주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그분께서 주신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갖은 죄의 원흉임을 똑 부러지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무어라 더 토를 달수가 없습니다. 항의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 일은 그분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그분을 괴롭히는 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란 당신 사랑을 무시하고 외면한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서운할 것이 백번 당연한 일임을 수긍하게 됩니다. 오늘 이름 모를 여자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니, 더욱 유구무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날 당신께 용서받아 구원된 이들에게 닥칠 수 있는 세상의 왜곡된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공개적이며 공식적으로 죄의 용서를 선언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죄를 회개한 사람들이 과거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거리낌 없이 새 삶을 시작하도록 마음을 써 주신 것이라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너무나 많이 무시당하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결코 무시당하지 않도록, 꼭꼭 단도리 해주신 것이라 살핍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우리에게 “너는…” “너는…” “너는…” 이라며 아파하시는 당신의 성심을 만나도록 합니다. 아울러 바오로 사도의 “나는…” “나는…” “나는…” 이라는 당당한 음성을 들려줍니다.
다윗도 바오로 사도도 우리만큼 주님의 속을 썩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자랑이며 기쁨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회개하는 믿음인을 기다리십니다. 완전히 변화되어 살아 갈 믿음인을 찾으십니다. 하여 함께 신앙의 길에서 서로의 위로가 되고 서로의 힘이 되는 믿음인의 대열을 꾸리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잘 차린 식사 대접이 아니라 회개하여 변화된 삶을 선물받기 원하십니다. 죄악이 만연한 세상, 주님을 무시하는 세상에서, 변화된 우리로 인하여 주님의 기쁨이 채워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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