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 걸 보니 세간의 반응도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라고도 하고 “옛 예언자 한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라고도 한다는 반응에는 그저 무심합니다. 세간의 엉뚱한 생각을 글렀다고 말씀하지도 않고 군중들의 동떨어진 판단을 반박하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같은 질문을 제자들에게 던지심으로 정작 주님께서 알고 싶으신 것은 제자들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십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 마음을 점검하라는 명령으로 듣습니다. 과연 주님과 나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여 그분을 따르고 있는지 살피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날 베드로가 고백한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 오신다면 망설이지 않고 베드로처럼 정답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척척 정답을 말할 수 있으니, 신앙 점수는 만점이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날 정답을 맞혔던 베드로였지만 이후에 얼마나 많이 흔들리며 지냈는지 또 얼마나 큰 과오를 범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님께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할지라도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아가 세례를 받아 가톨릭신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형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숙고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드려지는 종교적 제사는 모두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한’ 인간의 욕구로 채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가톨릭신앙은 독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선 인간이 아닌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의 사랑을 계시하셨다는 점에서 타 종교와 뚜렷이 차별화됩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처지를 가엾이 여기신 하느님께서 먼저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는 점에서 너무도 판이합니다. 신이 스스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고 죽임을 당하는 일은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시기에 가능한 하느님만의 생각이며 방법입니다. 그 진리를 인지하기에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감사와 찬미로 채워집니다. 기쁨과 환희가 솟아나는 천상의 잔치로 꾸며집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그 찬란한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우리의 속내를 캐물으십니다. 구원에만 귀가 솔깃하여 고난이라면 넌더리를 내기 일쑤이며 부활만 탐하고 죽음은 결사코 피하려드는 우리의 행위를 고치라 하십니다. 왜 꼭 고난이 필요하다는 건지, 왜 꼭 죽어야만 하는지 마땅찮아서 믿음의 뒷맛이 늘 떨떠름해져있는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고작 소원을 빌어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우리, 믿음을 빌미로 ‘복’을 챙길 요량만 그득한 우리를 향하여 당신의 사랑을 먼저 기억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깊이 숙고해 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속 시원한 답을 들은 후에 가장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당신의 사람에게는 감수해야 할 고유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믿음인이라면 세상의 풍요가 아닌 험난하고 고된 고난의 길에 동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신앙고백은 “주님을 향한 믿음이란 정녕 목숨을 잃을” 각오를 결단하는 일입니다. 진정으로 당신의 뜻을 살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잃겠다는 엄청난 맹세입니다.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내 목숨은 주님의 것이라는 대단한 선언입니다. 삶과 죽음이 주님의 손 안에 있다는 진리에 내 생명을 거는 막중한 언약입니다.
우리는 그날 정답을 말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철저히 변화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살겠다고 주님을 부인한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빤히 알면서 모른 척 외면하고 포기한다면 이미 죽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말로만’ 정답을 드리는 어린 신앙이 아니라 더 큰 믿음으로 성숙하여 주님께 든든한 제자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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