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파이프(John Piper) ‘세례대의 유리화’, 1960년경, 코번트리 대성당, 코번트리, 영국.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성당을 잃어버린 코번트리 신자들은 새 성당을 신축하면서 옛 성당 포함하여 새 성당 곳곳에 그 흔적을 보존하며 기억하고 있다. 새 성당 지하에는 이 성당의 장구한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코번트리 대성당만이 간직한 지난날의 영광과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코번트리 대성당 세례대.
신자들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할 때면 오래전에 방문했던 코번트리 대성당의 세례대와 유리화가 생각나곤 한다. 나는 그 성당의 아름다운 세례대와 그곳을 장식한 유리화 아래에서 오랜 시간 머문 적이 있다. 텅 빈 성당과 텅 빈 세례대 앞에서 내가 받았던 지난날의 세례 때를 회상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세례성사와 관련된 아무런 추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날 이 유리화를 바라보면서 유아세례의 날에 하느님의 큰 은총이 내 작은 몸을 감싸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성당에는 고정적인 세례대가 없기 때문에 제단 앞에 마련된 임시 세례대에서 세례식을 거행한다. 우리 성당에도 아름다운 세례대가 있다면 세례성사는 더욱 품위 있고 경건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예비신자들도 세례대를 바라보며 세례성사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도 세례대를 오가면서 자신이 받았던 세례성사를 회상하며 신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가꾸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코번트리 대성당에 있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세례대가 우리 성당 안에도 설치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