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천사로부터 주님의 잉태에 관한 예고를 받고 천사에게 답하셨던 내용입니다. 만일 제게 그런 예고를 주셨다면 이런저런 계산을 해가며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든지, 불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든지 했을텐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하신 성모님의 고백은 우리 신앙의 모범적인 겸손과 순명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구교 집안(6대)에서 태어나 3일 만에 유아세례를 받은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씀에 따라 성당에 잘 다니고 복사,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주님의 자녀였습니다. IMF의 어려움 속에서 직장을 잃고 힘들어하며 모든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또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순명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넘치는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결혼 17년 만에 어머니의 갑작스런 뇌출혈은 노모를 시골에 홀로 계시게 하지 않기 위한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께도 연옥 단련을 지상에서 미리 받으신다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말씀드리며 저희 집에 모셔왔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꾸르실료 교육을 통해 봉사자로 부르셨고, 전합수 신부님를 통해 꾸리아 단장, 선교분과장으로 봉사할 기회를 주셨으며 급기야는 ‘총회장’이란 중책으로 부르셨습니다. 순명하는 것이 주님과 성모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라 말해온 제 자신이 인간적인 망설임으로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루카 5,10-11)는 예수님과 시몬의 첫 만남을 묵상하게 됐고,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다 채워 주실 것이라는 원로 회장님을 통한 하느님 말씀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또 그동안 베풀어주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순명하며 기쁜 마음으로 2년을 열심히 지냈습니다. 지난해 9월, 새로 부임하신 김동원 신부님께서 연임해 줄 것을 당부하시어 순명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부족하기만한 삶이었고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지만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모든 이의 종이 돼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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