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이다. 지난해 6월 25일 염수정 대주교가 제14대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지 일년이 흘렀다. 염 대주교의 사목적 행보는 사계만큼이나 변화무쌍했다. 그의 사계는 격정적인 여름과 소통의 가을, ‘새로움’을 준비하는 겨울, 봄의 설렘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새 복음화에 대한 열의가 사라지지 않았다.
염수정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 1주년을 맞아, 그만의 사계를 따라가 본다.
- 격정의 여름 ① 임명, 그리고 착좌
지난해 6월 25일, 서울대교구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10여 년 동안 교구를 이끌어왔던 정진석 추기경이 교구장직을 은퇴하고, 당시 교구 총대리였던 염수정 대주교가 새로운 아버지로서 교구민들을 돌보게 된 것. 성실하고 뚝심있는 새로운 교구장은 많은 기대를 모았다. 기대는 착좌식이 봉헌된 명동성당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한낮 기온이 33℃를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3000여 명의 신자들이 찾아와 염 대주교의 교구장 착좌를 축하했다. 600여 명의 교구 사제들은 ‘신학교 교가’를 한 목소리로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임명부터 착좌까지 모든 순간이 격정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착좌 당일이 한국전쟁 발발일이기에 평양교구 서리를 겸하는 그에게는 의미가 컸다.
▲ 지난해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에서 장엄축복을 내리고 있는 염수정 대주교.
- 소통의 가을 ② 말하기보다는 ‘경청’
가을은 소통으로 하나된 계절이었다. 서울대교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트위터·페이스북, 이하 SNS)와 팟캐스트(Podcast) 서비스를 전격 실시,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과의 소통에 나섰다.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모든 계층과의 소통에 관심을 드러낸 염 대주교의 의지가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에 박차를 가했다. 소통의 물꼬는 올 2월 염수정 대주교의 페이스북 개설로 이어졌다.
계층을 막론하고 소통을 하고자 했던 염 대주교는 지난해 10월 3일 노인의 날 기념 ‘걷기 대회’에 직접 참여, 참가자들과 함께 총 7km 코스를 걸었다. 또한 가을은 사제들과의 소통을 준비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친교의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를 주제로 11월 21일 열린 사제토론회는 ‘소통’을 화두로 진행됐다. 염 대주교는 이날 토론회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제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염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열정을 키우고 모든 것을 헌신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해, 말하기보다 경청하며 인화(人和)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염 대주교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 테블릿PC로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속, 글을 확인하고 있는 염수정 대주교.
- 새로움을 준비하는 겨울 ③ 교구 현안 나눈 ‘사제전체모임’
염수정 대주교는 교구장 착좌 이후 첫 전례력 새해를 맞이했다. 이에 사목교서를 발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신앙의 해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열의를 내비쳤다. 그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랑의 열매 맺는 신앙 등 다섯 가지 지침을 교구 사목방향으로 제시했다.
이번 겨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염 대주교의 행보는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사제전체모임’이다. ‘교구 내 소통 활성화 방안’과 ‘보좌 사제기간의 장기화 현안 해소’ 등을 의제로 한 이번 모임은 이례적으로 교구 사제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됐다. 대형화 되고 있는 한국교회 안에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구체적인 논의로 풀어나가는 사제전체모임은 다른 교구에도 좋은 선례가 됐다는 평이다.
▲ 지난 2월 21~11일 열린 서울대교구 사제전체모임에서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는 주교단과 사제단.
- 봄의 설렘 ④ 각계각층 신자들과 함께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은 항상 설렌다. 염수정 대주교의 봄 역시 설렘으로 시작됐다. 각계각층의 신자들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부활에 앞서 염 대주교는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개최한 ‘교구장님과 단체 만남의 날’행사에 참여해 각 단체장들을 독려했다. 단체사목 활성화를 위해 1박2일 간 연수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활의 기쁨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내 수감되어 있는 사형수들과 함께했다.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인 4월 5일 봉헌된 이날 미사에서 염 대주교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사형수들을 따뜻하게 포옹했다.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마저도 소중하게 여기는 주 예수를 따르는 목자의 모습이었다.
▲ 지난 4월 5일, 염수정 대주교가 서울구치소에서 미사에 함께한 한 사형수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포옹하고 있다.
- 다시 여름 ⑤ 순교 역사·한반도 평화 강조
한국교회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염 대주교는 착좌 1주년을 맞이하는 6월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2월에 이어 다시금 600여 명의 교구 사제들을 한 자리로 모았다. 사제의 신원과 사명에 합당한 성덕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사제성화의 날, 교구 내 순교성지를 도보로 순례한 것. 염 대주교는 명동성당에서 시작, 한국 천주교 창립터, 좌포도청 터, 의금부 터, 우포도청 터, 경기감영 터, 서소문 순교성지에 이르는 4.3km코스를 사제들과 함께 걸으며, 신앙선조와 순교성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착좌식이 한국전쟁 발발일이었던 만큼 염 대주교에게 ‘한반도 평화’는 큰 화두다. 사제성화의 날 역시도 ‘정전 60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마련됐다. 염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참회와 속죄를 통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맨 왼쪽)가 도보순례 중 한국천주교회 창립터(수표교)에서 사제단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