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너무나 친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면 자꾸 넓어지고 커지기만 합니다. 저마다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도 많습니다. 끝내는 설명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라 미뤄놓습니다. 그래도 또 궁금해지고 누군가의 설명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도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는 책입니다. 어찌 읽으면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책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딱히 사랑에 관한 새롭고 독창적인 설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너무 유별나지 않고 차분하게 사랑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이 책의 장점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 책에서 코린토1서 13장에 나오는 바오로의 사랑 노래를 중심 자료로 선택합니다. 코린토1서 13장의 사랑 노래는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좋아하고 깊은 영성을 체험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렇게 익숙한 코린토1서의 사랑 노래를 한 구절 한 구절 차분하고 깊이 있게 풀이해줍니다. 이미 많이 들었던 구절이지만 ‘이런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 것이었구나’ 새삼 묵상하게 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가 강조하는 사랑의 핵심은 “인간 내면에 있는 능력이자 힘”이라는 점입니다. “사랑은 우리 인간을 움직이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이고, “이러한 사랑의 근원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내면 안에 깃들어 있는, 결코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 인간의 본성임을 깨닫고, 일상 속 사람들과의 만남(관계)에서 내면의 사랑이 생동하는 삶을 살 때 진정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사람마다 독서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각자 관심과 성향에 따라 어느 한 부분에 좀 더 집중해도 좋을 것입니다. 철학적 신학적 해석을 흥미있어 하는 독자라면 <바오로의 사랑 노래>와 <솔로몬의 사랑 노래> 부분에, 현실 삶 안에서의 영성적 성찰과 실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사랑 노래와 심리학> <사랑 노래와 부부상담> 부분에 집중해 읽으시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각박한 현대 사회의 조건에 시달리면서 내면의 사랑이 메말랐다 느끼는 분들에게 이 책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책갈피
어떤 부인이 내게 털어놓기를, 퇴직한 남편이 집안일을 돕거나 집수리를 하는데 너무 게을러서 화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로 대화를 나눈 것도 벌써 여러 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신문을 읽거나 취미생활을 하며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고, 부인이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신앙이 독실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며 자책했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책하는 대신 자신의 분노를 남편을 일하게 만드는 힘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분노를 통해 자신이 남편에게 품었던 환상을 깨뜨려야 합니다. 남편은 그냥 게으른 것입니다.
- 본문 77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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