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온 로사린(51)씨의 집은 성한 곳이 없었다. 누렇게 뜬 벽지와 장판은 군데군데 떨어져 압정으로 임시로 고정했고 외벽과 맞닿은 한쪽 구석은 삭아버려 균열이 생긴 곳까지 있었다.
이 집에 와서 13년 동안 한 번도 집을 수리해본 적이 없다. 아니 수리할 수 없었다. 관절에 이상이 생긴 남편은 일할 수 없었고 로사린씨가 가까스로 벌어오는 돈도 생계유지를 위해 쓰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로사린씨는 나은 편이었다. 친구 중에는 직장도 구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수원교구 이주민센터 안산 엠마우스(전담 김창해 신부)가 경기도시공사 주거복지처와 함께 ‘행복한 주거환경 만들기’ 사업에 나섰다.
6월 26일 2개 가정의 집을 고쳐주면서 시작된 ‘행복한 주거환경 만들기’는 경제적으로 열악해 노후된 집을 수리하지 못한 채 생활하는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들의 주택을 무료로 수리하고 새로 도배와 장판을 해주는 사업이다. 현재 12월까지 10가구의 집을 고쳐주기로 예정돼 있다. 지금까지 교회 안의 많은 단체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집 고쳐주기를 시행했지만 이주민만을 위해서 사업이 기획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사업은 이주민 자립을 위한 과정의 일부분이다. 이주민의 자립에 집과 경제력을 필수 요소로 보고 이주민을 돌보던 안산 엠마우스 박선화 수녀의 아이디어에서 경기도시공사와 연계, 집 고쳐주기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안산 엠마우스는 집 고쳐주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업을 통해 주거환경이 안정된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행복한 주거환경 만들기’ 사업으로 집을 수리한 로사린씨는 “초등학생인 아이 방에 벽지가 떨어지고 여러 불편함이 있었는데 집을 수리해서 정말 행복하다”고 전했다.
박선화 수녀는 “이주민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일회적인 지원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힘든 작업이지만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연계를 통해 최대한 도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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