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소외되게 만든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만 내세우고 다른 가치들을 외면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형국이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소장 강우일 주교)가 28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연 ‘세계 경제위기와 가톨릭 경제윤리’ 세미나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그리스도교적인 대안들을 살펴보는 시간으로 관심을 모았다.
세미나에서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의 기조강연에 이어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김항섭 교수가 주제발표에 나섰다. 또 부문별 패널 발표에서는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실천할 수 있는 ‘윤리적 소비, ‘사회책임투자’,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과 관련해 각계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이용훈 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는 많은 부분, 가톨릭 정신과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세상의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가족의 연대성이 가장 긴급하게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김항섭 교수도 주제발표에서 “신자유주의에 관한 대안마저 수입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 안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시장의 논리를 지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세미나 기조강연과 주제발표 및 패널발표들을 요약, 소개한다.
# 기조강연
■ 세계 경제위기와 가톨릭 경제윤리 -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세상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가족의 연대성이 가장 긴급하게 요청된다. 그리스도인은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질서를 위해 연대성의 원리는 이익의 분배와 노동대가인 보수에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다양한 연대성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교회는 이윤이 경제 활동의 유일한 원칙이고 궁극 목표라고 주장하는 이론을 부정한다.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반드시 악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과한 욕심이 사회질서를 혼란케 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가 고통받는 원인을, 잘못된 경제 이념과 극심한 빈부격차, 재물의 숭배로 규정하면서 정치와 금융, 세계 경제 체제와 이념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이에게 유익한 윤리적인 경제 개혁이 이 시대의 막중한 과제라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시장 기능의 무제한적 자율성과 투기 금융을 지지하는 경제이념에서 비롯됐으며,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비주의는 ‘인간’을 사용하고 버리는 ‘소비재’처럼 취급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교황은 공동선 확립과 불평등 구조 개선을 위한 국가의 시장 개입을 촉구한다.
# 주제발표
■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적 논의와 실천 : 가톨릭 ‘사회교리’를 중심으로 - 김항섭 교수(한신대 종교문화학과)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논의나 비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굉장히 늦었다.
천주교 쪽에서는 1997년 경제 위기에 대해 (사)우리신학연구소가 가장 발 빠르게 대응했다. 연구소는 1999년 ‘IMF 시대의 사목 환경 변화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같은 해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과 공동으로 국제포럼도 열었다. 이는 한국에서 나아가 아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국내 최초의 국제학술회의였다. 포럼의 한국인 참가자들은 이후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한국 천주교 연대’(‘천주교대안경제연대’로 개명)를 출범시키고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왕성히 활동했지만, 국제포럼에서 제시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명확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또는 대안프로그램에서 이렇다 할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와 공동으로 ‘사회적책임투자운동’(현 기업책임시민센터)을 출범시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신자유주의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가르침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문헌들을 통해서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문헌, 특히 ‘진리 안의 사랑’에 등장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그에 기반한 세계화의 폐해와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두 교황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운동방식만으로는, 사회와 다차원적인 채널을 갖는 자본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란 매우 힘들고, 따라서 자본-노동자 관계 뿐 아니라 자본-투자자, 자본-소비자 관계에도 주목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보편적 모델로 알고 있는 서구의 자본주의나 동구의 사회주의를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서구의 것이 진리처럼 인식되는 것’을 타파하고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시장 논리를 지양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 패널발표
■ 윤리적 소비 - 천경희 교수(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
윤리적 소비란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믿음에 근거한 의식적인 소비선택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동안 개인의 단기적인 경제적 효율성에 근거해 소비해왔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고려를 해서 소비생활을 하는 즉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윤리적 소비의 실천 영역은 ▲윤리적 상거래 ▲구매운동 ▲불매운동 ▲녹색소비 ▲로컬소비 ▲공정무역 제품 소비 ▲공동체화폐운동 ▲절제와 간소한 삶 ▲기부와 나눔을 들 수 있다.
천주교회가 이끌어야 하는 주제는 무엇보다 삶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소비절제와 간소한 삶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절제와 간소한 삶은 단지 소비생활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에서 이뤄지기에 ‘윤리적 소비’의 실천영역 중 가장 차원이 높다. 이러한 삶은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신적 만족을 위해, 주변의 공동체를 생각하는 삶을 위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다.
■ 사회책임투자의 발전과정과 현황 - 박주원 상무(한국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평가)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재무적 가치 뿐 아니라 환경, 지배구조, 사회 등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투자하는 행위로, 근거는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세계화의 현상에 대처하는 신앙인의 통합적인 삶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안적 노력을 경주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스스로가 진정한 인류의 가치가 시장과 권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 낙오하고 피폐화된 이들의 사후적 구호 활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계층의 발생을 최소화 시키는 사전적 활동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가 선행돼야 하며, 건강한 투자자와 소비자로서의 원칙 천명과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천주교 기관 스스로도 재정 부분의 투명 경영과 합리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
■ 가톨릭교회 내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언 - 윤경중 센터장(카리타스사회적기업지원센터)
‘자본’이 아닌 ‘사람’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최고 원리인 ‘인간존엄성의 원리’에 합당하게 운영된다.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서비스 제공 등의 사회적 목적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도 ‘공동선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제 사회교리의 선언만으로 인간본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사회적 경제가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가르치는 경제관념에 부합한다면, 이를 양성하는 것을 사목적 주제로 가져가고 이를 실행할 조직들을 양성, 지원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교리를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교회 내 사회적 경제 주체들을 지원해 성공시킴으로써 다양한 모델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또 사회적 경제 주체들의 대 연합을 구성해 사회교리에 입각한 원칙을 잊지 않도록 독려하고, 사회적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교회가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주교회의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 대안세계체계의 이론적 구성과 협동조합 - 김기태 소장(한국협동조합연구소)
협동조합이 대안세계체계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업체의 한 형태인 협동조합 자체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협동조합 및 대안세계체계의 여러 구성 단위를 활성화시키는 중층적인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조합원 수준의 제도 개선과 개별 협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제도들의 개선이 필요하다. 또 권위 있는 연합회 설립을 촉진하고, 시민사회 혹은 국가제도적 차원에서 협동조합의 특성에 적합한 정책들과, 국제적 차원에서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협동조합 금융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사회투자 금융과 함께 현재의 파괴적이며 초국가적인 금융자본에 공정한 핸디캡을 부과하는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초국가적 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면,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민주적 운영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난점도 해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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