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시작된 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 왜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를 외치는가? 그것은 지금의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복음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의 교회는 자본이 주도하는 세상의 힘 앞에서 적당히 순응하며 동거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수많은 신도들을 확보하고 있는 교회는, 잘 짜인 조직과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세상 속에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권력의 중심에는 성직자들이 있고, 성직자들은 잘 미화된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있다.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성직자들은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교회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더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더 많은 헌금을 거두어들이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논리는 정당하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폭넓고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시설과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충실하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세상과 대치는 성직자들의 자만과 아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성직자들은 기존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용감하게 새 길을 낼 의지가 있는가? 만일 그러한 의지가 없다면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교회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들먹이며 신자들에게 봉헌과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그 스스로는 발전과 성장의 논리 속에 매몰돼 빠져나올 줄 모른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미 교회의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지금 교회는 복음적인가’라는 질문이다. 수원교구 성직자들은 교회 본연의 사명의 말씀 선포에 얼마나 충실한가? 외형적인 성장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동안 얼마나 충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는가?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 냉담하고 있는 현실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교회가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상 문제의 핵심에는 성직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복음화의 논의도 성직자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성직자는 삶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성직자들이 본연의 직무 밖의 부차적인 것들, 예를 들어 성당의 관리 운영, 건축, 사회복지, 그밖에 다양한 사회적 운동들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겨 말씀 안에 머물 수 있는 절대적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성직자들에게서 유능한 관리자나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발견할 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