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아니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존재로의 초대는 늘 설레게 하는 뭔가를 가슴 한가득 품게 한다.
그 곳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만남은 뜨뜻미지근한 일상에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청량제 이상이다. 특히나 그것이 새로운 깨달음과 그로 인한 조그만 삶의 변화라도 불러올 수 있다면….
올해 여름에는 잠시 여름을 잊게 하는 곳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자, 떠나보자. 가슴 속 어딘가에서 살짝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부르는 새로운 세상, 신비한 만남으로….
■ 제주 만장굴 세계자연유산해설사 이은자씨
바깥은 영상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불볕더위. 하지만 입구의 온도계는 15도를 가리키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수은주는 11도까지 떨어진다.
천연기념물(제98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우리나라 최초 세계지질공원, 세계7대자연경관이라는 명성이 조금도 무색하지 않은 제주도 만장굴로의 초대는 큰 행운임이 분명하다.
“주로 석회동굴을 봐온 사람들은 크고 웅장한 용암동굴을 보고 아주 신기해합니다.”
지난 2010년부터 4년째 만장굴에서 세계자연유산해설사로 활동해오고 있는 이은자(아녜스·55·제주중앙주교좌본당)씨의 몸짓 하나하나에서는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10∼30만년 전에 걸쳐 생성된 만장굴은 총 길이 7416m, 최대폭 23m, 최대 높이 30m로, 용암동굴로는 제주도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굴 안에 제주도민이 다 들어가도 될 정도로 웅장하다.
▲ 용암표석 앞에서의 이은자씨.
“여름이면 시원해서 좋고 겨울이면 따뜻해서 좋아요.”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씨가 조건이 더 나은 곳을 마다하고 만장굴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딴 데 있다.
“동굴 생성물을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신비로운 작품에 감탄하게 됩니다. 생성물 하나하나에도 주님의 가르침이 담겨있음이 느껴집니다.”
용암종유, 용암표석, 용암선반, 유선구조 등 용암이 흘러가면서 굴 곳곳에 펼쳐놓은 기묘한 생성물들의 모습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7.6m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용암석주는 물론이고 ‘황금박쥐’로 더 잘 알려진 세계적 희귀종 붉은박쥐를 비롯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종인 관박쥐와 긴날개 박쥐 수백 마리,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묏폴호마 거미’ 등을 만날 수 있는 만장굴은 그야말로 동굴 생태계의 보고다.
“한 부모 밑 자식도 개성이 저마다이듯 오랜 세월 화산활동을 통해 200번 정도 마그마가 흐르며 만들어놓은 만장굴 곳곳에서는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태고의 신비와 만날 수 있어요.”
▲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용암석주.
“신기한 동굴 생성물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신비를 떠올리게 된다면 훌륭한 피서를 한 셈입니다. 저도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때가 많거든요.”
운이 좋으면 퍼덕퍼덕 날갯짓하며 공중을 유영하는 황금박쥐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서상덕 기자>
■ 수조 속 펼쳐진 작은 바다 관리자, 아쿠아리스트 최성필씨
‘첨벙~’
극장의 스크린처럼 펼쳐진 대형 수조에 다이빙 수트를 입은 아쿠아리스트가 등장하자 관람객들이 환호한다.
즐거운 분위기도 잠시, 아쿠아리스트의 손에 들린 먹이를 보고 자동차만한 상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죠스’의 영화음악이 흐르고 접근하는 상어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능숙한 아쿠아리스트가 상어들을 유인하며 먹이를 전달하자 앞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은 유치원생들이 손뼉을 치며 안도의 응원을 보낸다.
▲ 다양한 종의 해양생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바다 사나이 최성필씨. 거북이와 함께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아쿠아리스트의 주요 업무는 대형 수족관에서 고객이 관람할 수중생물을 사육, 관리, 연구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다이버와 혼동할 수 있는 아쿠아리스트는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쇼를 펼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중생물전문가로 수조 속의 환경과 생물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저는 시니어 큐레이터로 몇 개 수족관을 관장하며 모든 전시 및 생물관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스킨스쿠버다이빙 강사로 활동하던 최성필씨가 아쿠아리스트로 입문한 계기는 해양생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우연히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원래 전공이었던 체육학과 졸업 후 다시 해양생물학과에 입학해 아쿠아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
최성필씨가 요즘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는 생물들을 보여주겠다며 안내한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보안구역 내 작은 수조.
“얼마 전 번식에 성공한 해마들이에요.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처럼 정성을 쏟으면 생물들도 반응을 한답니다.”
아쿠아리스트의 가장 큰 보람은 생명을 보살피는데 있다. 현재 부산 아쿠아리움은 부산·경남 구조재활치료센터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다친 해양 동물들에 대해 신고가 들어오면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거쳐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접하게 될 때면 늘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따듯한 품 안에서 이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세상에 펼쳐져 있으니까요.”
▲ 상어와 물고기떼.
400여 종 4만 여 마리의 해양생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바다 사나이 최성필. 그는 오늘도 신비로운 생물들을 보며 기뻐하는 아이들의 미소에서 힘을 얻는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