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몇 년간 나를 둘러싼 현실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 질문 가운데 만난 강우일 주교님의 책은 내게 큰 빛과 힘이 되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각한 양극화, 가정의 해체, 생명 경시와 생태 파괴, 해고 노동자, 터전 잃은 농민, 왜곡된 교육과 언론…. 신음하는 이 땅의 현실 앞에서 과연 인간으로, 크리스천으로, 수도자로, 바오로딸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내 자리에 계셨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예수님의 사랑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갈 것인지를 예리한 감성으로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현실을 꿰뚫어 보며 귀를 기울이고, 아픈 이들의 아픔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본문 19쪽
물론 이 책이 모든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우리의 이 현실 앞에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교회의 어른이 계시다는 것이었다.
강 주교님은 책에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이라고 하시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인간의 품위와 존엄이 지켜지도록 하는 모든 일”에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신다.
민족 화해와 평화, 생명 윤리, 여성의 존엄, 제주 강정, 구제역, FTA, 탈 원전 등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복음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으로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하신다. 특별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를 맞아 출간한 이 책이 살아있는 신앙을 찾는 모든 이에게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런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하여 더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가?
이 책이 고마운 것은 바로 그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제주 땅 한편에서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가난한 형제들과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면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으로 어떤 억압과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의 길을 찾는 우리 모두의 벗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책갈피
모두가 일렬종대로 경쟁 대열에 끼게 되고 그 대열에서 낙오되는 데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목숨까지 지워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게 된다 … 경쟁에 이긴 사람도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경주에 일조했으므로, 하느님 대전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 여고생이 제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한 기사가 났다. 유서는 단 네 글자였다.
‘이제 됐어?’
그 여고생은 엄마가 요구한 성적에 도달한 직후 죽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외고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이었다.
- 본문 119~12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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