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사도는 오늘 말씀이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으로 혼잡했던 상황에서 “몇몇 제자”들에게만 들려주신 것임을 밝힙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향하여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시지만 우선 ‘받아들일 만한’ 신앙인의 마음 밭에 집중적으로 말씀의 요지를 심어 주신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오늘 말씀이 그분께 집중하여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갈 몇몇 제자에게만 들려주신 내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을 모아 새겨듣게 됩니다. 당신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의무사항’을 꼼꼼히 챙기고 싶어집니다.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변화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은 온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인류가 귀를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말씀의 능력은 간절히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기 원하는 몇몇 사람만을 치유시킬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이끌려 살아가는 은총의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강론을 준비하는 제 마음이 자꾸만 2독서에서 딱 한번 언급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로 쏠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말 그대로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인 믿음으로 가득했는데요. 이야말로 모든 신앙인들이 꿈꾸는 로망일 터입니다. 2독서가 들려주는 아브라함의 삶, 오직 “믿음으로” 그분의 뜻을 실행하기에 거침이 없는 모습을 묵상하다 불쑥 아브라함의 믿음이 사라의 내조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었던 탓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던 우직한 남편 아브라함의 결단에 군소리 없이 따랐던 아내, 사라의 마음을 뒤집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순종하였습니다”(1베드 3,6)라시며 사라의 삶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신 이유를 캐고 싶어졌습니다.
솔직히 창세기를 통해서 알려진 사라의 생활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양순한 남편 아브라함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입니다. 자기 생각에 따라 변덕을 부리고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면모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남편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의 동침을 권하고선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나자 태도가 돌변해 버립니다. 하갈을 구박하는 것도 모자라 내쫓아 버리기를 청하는 장면에서는 만정 떨어집니다. 문제는 하느님께서 내내 이 극성맞은 사라의 역성을 든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 주어라”(창세 21,12)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라는 평생 동안 ‘남편에게 순종하였다’고 단언하십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결정을 내릴 때마다 바가지를 긁고 툴툴대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원했더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았고 격려했던 지혜의 소유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아내들에게 특히 그리스도인 부부들에게 당신이 원하는 부부의 모습을 가르치려 하신 것이 아닐까요? 아내와 남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일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우려 하신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과의 해후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참 행복의 모습을 스케치해 주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의 행복은 결코 걱정 없고 고민 없는 무사안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놓고’ 밝히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세상의 가정에 들려주는 가르침으로 듣겠습니다. 가족의 마음가짐이 아브라함을 향했던 사라처럼 지혜로울 때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섬김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란 뜻으로 새기겠습니다.
사랑은 그리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주님을 그리워합니다. 하여 그분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설렙니다. 하루에도 몇 번,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양새를 점검할 것입니다. 그분께 보여드릴 삶이 어여쁘도록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야말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사람의 행복’이라 믿습니다. 이야말로 믿음으로써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되는 비결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사랑의 기다림으로 가득하여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참 행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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