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떠난, 구속주회 악셀로드 신부의 자서전 ‘키릴 악셀로드 신부’는, 청각과 시청각 장애인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큰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 세상엔 할 일이 있다, 나도!”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책이 나오기 전, 휴가를 떠나면서 이 책의 교정본과 동행했다. 처음에는 일로 읽다가 어느 순간 원고를 덮고 조용히 눈을 감고 악셀로드 신부가 돼 보니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저자가, 비장애인도 쓰기 어려운 한 권의 책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런 기적과도 같은 악셀로드 신부의 삶의 증언록이다. 우선 정통파 유다교 집안에서 자란 그가 가톨릭 사제를 꿈꾼 일이 그러했다. 유다인에게 개종은 그 사회에서의 죽음과도 같으니 말이다. 들을 수 없는 그가 일반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것 또한 그러하다. 그는 입술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데, 교수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강의를 했던 것이다.
그의 일생은 크고 작은 장애들로 가득했지만, 그는 그 장애들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거기서 자신의 또 다른 성소를 발견해 내며, 마침내 “장애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한다.
원고 상태의 이 책을 읽으면서, 장이 끝날 때마다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영상으로 그려보았다. 많은 이들이 내 마음속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과 상황들이 이해되고 실체로 다가왔다. 그날 결국 정해진 일정을 포기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냐시오식 피정을 하듯 한 장 한 장을 영상으로 마음에 담아 보았다.
정통파 유다교 집안의 외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때의 그 부모와 자식의 마음, 신학대학 졸업을 자신의 골방에서 이루어낸 신학생의 모습, 차부제품을 받은 신학생을 유다교 어머니에게 보내 함께 유다교 안식일을 지키게 해 준 학장 신부님의 종교를 넘어선 배려, 전혀 볼 수 없게 된 절망의 시기의 사제 등등. 특히 악셀로드 신부가 유다교 시청각장애인과 눈물로 하가다 예식을 나누는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그려졌다.
“내가 이 책을 왜 좋아할까”라고 자문해 본다. 같은 사제직을 가는 내 자신의 바람이 악셀로드 신부 안에서 영글어가는 것을 보았기에, 부끄러움과 기쁨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끈 게 아닌가 한다.
책갈피
이스라엘에서 많은 역사적·종교적 영향을 받아 제 영혼이 제 유다인 정체성과 가톨릭 신앙 사이의 일치의 증표를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 몇 년 뒤에 저는 구속주회 신부님 세 분과 함께 통곡의 벽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제 키파와 기도 숄과 트필린을 가져가 로만 칼라의 검정색 셔츠 위에 착용했습니다. 한 유다인 신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게 가톨릭 신부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저는 가톨릭 랍비입니다.”
- 본문 17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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