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를 준비하는 교구 신부님 한 분이 몇 달을 우리 수도회 본원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고향은 경상도지만, 평소 식탁에서 대화를 할 때에는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전혀 못 느낍니다. 그런데 미사 강론 때는 본의 아니게 구수한 경상도 억양이 불쑥 튀어나와서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분들에게 즐거움의 미소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신부님이 미사 주례를 맡아 강론하실 때였습니다. 그날은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에 관한 주제로 강론을 하셨는데, 신부님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저희 어머니는 저를 성당에 자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어느 날, 동네 친구들하고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를 찾아오시더니 ‘지금 성당에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친구들과 노는 것이 하도(서서히 경상도 사투리가 시작됨) 재미있어서, 고마 당당하게 성당에 가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그카니까 어머니께서는 ‘니 지금 뭐라카노? 뭐어, 성당에 안 간다꼬? 니 요 온나. 잔말 말고, 퍼뜩 성당 가자!’ 이렇게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친구들 앞에서 억수로 쪽팔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무이에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에이씨, 그라믄 내 언제까지 성당에 가야하는데?’ 그러자 어무이는 무서븐 도끼눈을 하시더니 ‘임마가 미쳤나! 성당은 니 죽을 때까지 가야한다! 니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성당에 가야 한다. 알겠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 ‘뭐예? 뭐라꼬예? 내가 죽을 때까지 성당에 가야 한다꼬예?’
아무튼 죽을 때까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제가 죽을 때까지 성당이라는 곳에 가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 말씀이 너무 강렬해서였는지 몰라도, 지금 제 처지를 보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성당에는 안 다니겠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죽을 때까지 성당에 다니면서, 죽을 때까지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고, 죽을 때까지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는 말로 강론을 마치셨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겉으로는 마구 웃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커다란 울림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만큼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입학과 졸업이 있고, 입대와 제대가 있으며, 입사와 퇴사가 있고, 초짜 생활과 정년퇴임의 시기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 이것 하나만큼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말이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진리에 대해서 깊이 깨우치는 사람이든, 언제나 깨달아가는 여정에 있는 사람이든, 늘 초심자 수준에 머물러 있든 간에 그것은 하느님이 친히 판단하실 몫이고,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삶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우리 삶과 신앙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갑시다.
그러면서 문득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도 말고, 너무 게으르지도 말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사는 것. 그것이 신앙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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