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제도와 방식은 도리어 성직자 자신들에게 독이 되고 있다. 사제들에게 주어진 권한과 지위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했고, 말씀의 선포라기보다는, 신자들을 가르침으로써 저절로 교만의 싹이 움터 나올 수밖에 없는 여건을 조성해줬다. 게다가 사제들에게서 보여지는 인격적 결함은 신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되고, 심할 경우 냉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성직자들은 목마르고 지치고 아프고 병이 들어도, 마음 편히 쉬면서 치유할 장소와 여가를 찾지 못한다.
사제가 좋은 설교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가 하느님 말씀을 자신 안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되고 훈련되어져야 한다. 애석하게도 요즘의 사제들은 교회 운영 전반에 걸쳐 책임을 맡고 관여,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지쳐있다. 사제들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영성생활을 돌보면서 주님 말씀 안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제들이 병들어가고 있는데도 당연한 직무수행만을 기대한다. 그들이 왜 설교를 힘들어 하는지, 왜 인격적 결함을 보이는지, 왜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지, 왜 사람들을 기피하는지 세심하게 지켜보고 배려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냥 사제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식이다.
지금 우리 수원교구의 사제들은 ‘기능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주교와의 개별적이고도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 그저 ‘순명을 잘하니 착한 사제들이다’라고 평가하기에는 그 상처의 골이 너무 깊다. 주교와 사제들 사이에 인격적 만남도 신뢰도 없다면, 그 안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생동감 있게 선포될 수 있겠는가?
사제는 주교와의 친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배우고 익히며 성화되고 있다. 또한 신자들과의 만남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발견하고 체험한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사제들은 자신을 내어놓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는’ 본연의 복음 선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들이 본연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어떠한 조건들을 마련해야 하는가? 수많은 토론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몇 가지 제언을 하자면 우선 ▲교회의 운영과 관리 감독은 이제 평신도에게 맡겨져야 한다. 또한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사제들의 내면의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치유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사제들이 신원의식을 확인하고 주교와의 일치를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도록 주교는 사제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사제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하는 피정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신학생들이 지적 수준만을 높이기보다 영적으로 풍요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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