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기 띤 음성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는 호통에 마음이 오그라듭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까지 얹히니 서늘해집니다. 한마디로 오늘 복음은 불편하고 몹시 생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가 ‘선언’이며 하느님께서 못을 박듯 확정 시킨 선포라는 점에 유념해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도무지 변경될 수 없는 진리라는 점에서 접근해 봅니다.
사실 오늘 주님의 냉혹한 말씀은 이미 구약의 예언자를 통해서 밝히신 것입니다. 미카 예언자가 가족 간의 분열을 낱낱이 예고하였고(미카 7,6 참조)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말라 3,24)는 다짐으로 마감됩니다. 그리 살피니 오늘 주님의 의중이 읽힙니다. 어이 이리 황당한 선언을 하셨는지 감이 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향하여 ‘깨알같이’ 당신의 가르침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요한 21,25)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은 귓등으로 흘리며 당신을 통해서 오직 세속적 욕심만 채우려는 ‘생각 없는 군중’을 깨우시려 안간힘을 쓰셨습니다. 나아가 매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살과 피로 채움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마치 하나의 이상처럼 여기는 통탄할 현실을 매섭고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완전히 뒤집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곧 ‘거듭 태어나는 것’이며 옛 생활에서 완전히 건너가는 ‘파스카’로 표현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오직 성령의 불로 우리 마음의 찌꺼기들을 불살라 없애고 싶은 까닭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고 도전할 것을 권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노기 어린 음성으로 으름장을 놓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간절한 심정을 토로하셨던 것을 알겠습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을 성령의 불로 새롭게 하여 고난 앞에서 당당하도록 무장시켜 주시고자 하시는 의중을 엿보게 됩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는 주님의 고백이 제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듯합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고 번민하는 인간 예수의 모습 앞에서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는 주님의 젖은 음성에서 제자들 마음이 찢어지듯 아렸을 것이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즐겨 바치는 묵주 기도의 지향에서도 드러나듯이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덕”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에 머뭇대지 않도록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위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믿음의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꾸준히 나아가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주님의 선언을 외면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반발했던 유다 주민들처럼 복음을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는” 것인양 오해합니다. 이렇게 굴곡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히브리서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다른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라며 독려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하늘의 기쁨을 기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도록 합니다. 믿음만이 힘든 일상에서 낙심하여 지쳐 버리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긴 세월을 두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반박하고 비판하고 비웃었지만 결코 복음은 수정되거나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을 듣는 우리들이 “웬 불?”이라고 질색할 것이 아니라, “앗 뜨거!”라며 뒷걸음 칠 것이 아니라 ‘어서’ 내 안에서 주님의 뜻이 아닌 것들이 몽땅 ‘성령의 불에 태워지기’를 소원해야 할 이유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몽땅 사랑의 불에 살라 나를 봉헌하게 되기를 간곡히 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침내 타오르는 사랑 안에 내가 죽어… 사랑의 불꽃으로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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