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줬던 당신. 나로 인해 고통 속에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을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 가족이 필요로 할 때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야. 이 편지로 당신 마음 다 달랠 수 없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와 남편으로 돌아가고 싶어. 사랑해.”
청색 수의를 입은 수용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미리 적어 온 편지를 읽어 나간다. 복받치는 감정 탓에 도중에 몇 번이나 읽는 것이 중단됐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애써 울음을 참던 아내의 붉어진 눈시울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9일, 의정부교도소 강당. 의정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홍기환 신부)가 마련한 아버지학교 모습이다.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건강한 아버지상을 확립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인 아버지학교는 본래 5주 과정이지만 교도소에서는 불과 3일 동안 진행됐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를 주제로 열린 아버지학교 마지막 날에는 특별히 수용자들의 가족들이 교도소를 찾았다.
“여러분들은 3일 동안 아버지학교를 통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완전한 남성의 표본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수건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세족례를 통하여 섬김의 자세를 보이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숫대야에 반쯤 잠겨 있는 아내의 맨발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강당 조명이 모두 꺼지고 찬양 팀의 성가가 흘러나왔다. 남편은 두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정성스럽게 한 발 한 발 천천히 아내의 발을 닦았다.
“미안해, 고마워”
남편의 눈물이 세숫대야에 떨어진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머리를 감싸 안고 귓속말로 위로한다.
“괜찮아, 앞으로도 함께해”
수용자 김기정(가명)씨는 이날 처음으로 아내의 발을 씻겼다고 했다.
“단조롭고 외로운 수용생활 중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집니다. 그동안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스럽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죗값을 모두 치른 후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봉사자 대표 김재기(대건안드레아·55)씨는 “교도소에서 진행하는 아버지학교는 일반 아버지학교 때보다 참가자들의 간절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사는 삶 속에서 아버지학교에 참가해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수용자들은 이미 교도소 안에서 자신을 깊게 성찰하고 바라본 상태로 프로그램에 임하게 되죠. 그래서인지 비록 3일간 진행되지만 5주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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