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이 새하얀 밀랍 원기둥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깎고 덧칠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한 사람의 일상과 믿음에서부터 우러나온 묵상이 조각도의 움직임, 붓질을 통해 초의 표면 위에서 되살아나는 것.
지난 13~15일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RIVUS 갤러리에서 세 번째 전시회 ‘나의기도’를 연 인천교구 고잔본당(주임 태진우 신부)의 성(聖)초 공방 ‘성 클라우디아’(회장 신옥) 회원들에게 초는 나만의 기도를 담는 빈 그릇 같다. 회원들 스스로 끈기를 갖고 초를 다듬어내는 시간이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쏟아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초를 완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인내와 정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 제목 또한 ‘나의기도’라고 정하게 된 것이지요. 초를 깎으며 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난해 4월 문을 연 ‘성 클라우디아’는 본당의 새 식구들을 위한 세례초를 깎는 일부터 시작했다. 세례자들이 세례성사의 특별한 의미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회원들이 직접 나서 각각의 이름을 새겨주는 것. 지금도 세례초 깎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성초에 관심을 둔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성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은 조각가의 수호성인 ‘성 클라우디오’를 여성형으로 바꾼 이름이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회원들의 열의는 남달랐다. 예민한 목조조각도를 다루는 위험스런 작업 환경에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초를 깎았다. 이와 같은 열정이 단 기간 내 세 번의 전시회를 마련하는 원동력이 됐다. 회장 신옥(안젤라)씨는 “초를 깎는 과정에 묘한 중독성이 있다”고 밝혔다.
신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주변의 지인들과 질병 등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초를 깎아 선물하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아픔과 슬픔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절망 중에 생각지도 못한 이에게 선물을 받는다면 뜻밖의 희망을 발견하지 않을까요? 마음의 기도를 담아 초를 깎으면 받는 이는 물론, 나 자신도 모두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이밖에도 ‘성 클라우디아’ 식구들은 전례시기에 맞춰 본당 내 초를 전시하거나, 제대 앞에 봉헌하기도 한다. 작품을 접하는 신자들의 반응도 좋다.
종종 회원들의 작품을 통해 성초에 관심을 갖게 된 타 본당 신자들까지 찾아오기도 하지만, 공간적 제약이 따르기에 다 수용할 수가 없었다. ‘성 클라우디아’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타 본당에서도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실 공방으로 성초 공예를 배우고 싶다는 분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제한 없이 회원들을 받았지만 공간적인 제약으로 더 많을 분들과 함께 할 수 없음에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초기부터 활동 중인 타 본당 회원분들을 해당 본당으로 독립시켜 새로운 모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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