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면 도시농부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들판에서 밭을 일구는 것도 아니고 옥상에 조그마한 텃밭하나 관리하면서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는 것인가’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옥상텃밭이 가벼운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 오히려 수시로 울며 칭얼대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듯한 정성이 필요하다.
옥상텃밭을 돌볼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흙이다. 건물 위에 텃밭을 조성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경량토에 영양이 충분한 흙을 사용해야 하고 뿌리가 건물에 직접 닿지 않도록 흙과 바닥을 떨어뜨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리고 흙의 수분을 유지하지 않으면 작물은 금세 말라버리고 만다.
‘들이나 산의 나무, 풀들은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빗물만으로 잘 크는데, 이렇게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있을까’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기자에게 홍대텃밭다리 멘토 김태균씨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들이나 산보다 옥상에 가꾸는 텃밭이 몇 배는 손이 더 많이 간다고 한다. 산이나 들은 물이 깊숙하게 스며들어 지하수가 순환하면서 땅의 수분이 유지되지만 물이 깊숙이 스며들 흙이 충분하지 않은 옥상텃밭은 물을 줘도 그 물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마르는 양이 많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 주는 것만 생각하면 산이나 들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또 물을 자주 많이 줘야한다고 아무 때나 주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햇볕이 강한 낮에는 가급적 물주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물을 주면서 작물에 맺힌 물방울에 태양의 빛과 열이 모여 작물이 상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나 저녁, 햇볕이 강하지 않은 시간대에 충분히 물을 주는 것이 좋다. 혹시 날이 너무 덥거나 물 양이 부족해 물주기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작물에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레 직접 흙에 물을 주면 된다.
그렇다면 물은 얼마나 자주 줘야할까. 정답은 텃밭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흙의 구성이나 흙의 양, 햇볕을 받는 범위, 화분의 모양 등에 따라 보존되는 물의 양이 달라 물을 주는 주기도 달라진다. 물을 줄 시기를 알고 싶으면 흙을 파보면 된다. 흙 안쪽에 수분이 있는지 확인하면 텃밭에 물이 필요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흙 속에 수분을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흙을 파봤다. 흙을 만지니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니 도시 속 일상을 살아가면서 흙을 만질 일이 없었다. 문득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라는 성경의 말씀이 떠올랐다. 흙은 다름 아닌 생명이었다. 기자처럼 텃밭초심자인 홍대텃밭다리 ‘다다다’ 팀의 이민경씨도 “도시에서 흙을 만질 기회가 없는데 텃밭을 일구면서 흙을 자주 만지고 있다”며 “흙을 만질 때마다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텃밭 물주기를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웃 건물 옥상에도 텃밭이 생겨있었다. 아마 저 이웃 건물의 텃밭 주인도 흙을 만지는 기쁨을 알게 됐을 것이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흙을 찾을 수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옥상텃밭을 통해 다시 흙을 만나고 있었다.
※도움 주신 단체 :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소년문화사목부,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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