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많은 군중을 먹이신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복음서에는 사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마태 14,13-21 마르 6,30-44 루카 9,10-17 요한 6,1-14)와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마태 15,32-39 마르 8,1-10)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단지 오래 전에 한번 일어났던 일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하나의 신기한 기적으로만 읽을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마태오 복음서 14장 13-21절의 본문을 통해 많은 군중을 먹이신 이야기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활동은 많은 군중을 모이게 했다. 새로운 질서와 가치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치유 행위는 많은 이들을 매혹시켰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잔치에서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마태 14,13)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바쁜 활동 중에서도 외딴 곳에 머무르셨고(마르 1,45 루카 4,42),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루카 5,16) 많은 군중을 먹이신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인 이 외딴 곳은 이집트 탈출 이후의 광야를 상기시킨다.(마르 6,31-32 루카 9,12) 이집트의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서 광야는 해방의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하느님은 그들을 먹이셨다. 하느님은 사회의 변두리, 외딴 곳에서 일하신다.
외딴 곳에서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14,14) 여기서 예수님 행동의 모티프는 ‘가엾은 마음’, 곧 ‘함께 느낌’(sympathy),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이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예수님은 변두리로 내몰린 이들, 제국적 질서의 희생자들을 치유하시고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먹이신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군중을 돌려보내 마을로 가서 먹을거리를 사도록 청한다. 즉 제자들은 군중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마을의 시장, 곧 제국의 경제에 기대를 건다. 사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그리고 그를 통해 여러 신들이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는 축복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질서와 가치의 전망을 제시한다. 땅과 그 생산물은 제국이나 그 지배 엘리트에 속한 것이 아니고 그들에 의해 공급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조주 하느님에게 속하며 그분에 의해 사람들에게 제공된다.(레위 25,23 시편 24,1 마태 6,25-34 12,1-8 15,31-39) 마을의 시장을 신뢰하는 대신에 예수님은 하늘의 새와 들에 핀 나리꽃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마태 6,24-34)을 실천하도록 제자들에게 도전하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마태 14,17)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엘리야(1열왕 17,8-16)와 엘리사(2열왕 4,42-43)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식량을 많게 하는 기적에는 항상 반대자들의 저항이 있다. 엘리야와 사렙타의 과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하자 과연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한편 시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었는데,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다.
예수님은 군중을 풀밭에 앉히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마태 14,19) 제자들은 마을의 시장에 기대를 걸었지만, 예수님은 필요한 것을 제공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하신다.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시는 행동에서 하느님과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동작을 묘사하는 ‘빵을 드시다’, ‘찬미를 드리다’, ‘빵을 떼시다’, ‘제자들에게 주시다’는 표현들은 최후 만찬(마태 26,26 병행)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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