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내야하는 교무금, 과연 얼마를 약정해야 할 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봉헌금은 매주 커피값 등을 아껴 모으는 노력 중이라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교무금 책정은 남편과도 의논해서 미리 챙겨야 할 부분이다.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내 모습이 좀 창피하기도 하고, 신앙생활과 관련해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해 교리반 봉사자분께도 여쭤보지 못했었다.
결혼 전 친구를 따라 잠시 개신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이 소식지에 실린 예물 항목이었다.
이름도 다양한 예물 항목과 그것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주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곤 예배 중에 장로님이 단상에 올라가 특별 감사예물을 낸 사람들의 이름을 주르륵 호명했다.
그때 나는 감사예물을 낸 사람들의 뿌듯해하는 표정에 ‘돈이 없으면 교회도 못 다니겠구나’라며 씁쓸한 기분을 느꼈었다.
지금도 그 친구는 개신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시어머니께서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과 생활비 대부분을 교회에 다 갖다줘서 속상하다는 하소연을 가끔 한다. 그 시어머님께서 권사님이 되어서 이래저래 바쳐야 할 것이 많다며, 며느리 모르게 아들에게 따로 돈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개신교회에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렇게 시시때때로 예물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없는 듯해 솔직히 마음 편하게 입교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정규 예비신자교리 후 교무금과 봉헌금에 관해 듣는 시간이 따로 있었다.

▲ 신자들은 교무금과 봉헌금을 생각하며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함을 느끼기도 한다.
봉사자는 실제 개개인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성의껏’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신자들이 교무금을 내는 것은 의무이지만, 교무금에 대해 부담을 가져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책임을 따로 규정한 제도도 없다고 했다.
나 또한 교무금을 내는 데에서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나라들처럼 정부가 종교세를 걷어 교회 운영비를 분배하거나, 미국처럼 기부금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교무금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세례 신청서를 낼 때 교무금 신청서도 같이 제시하면, 내가 내는 교무금은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게 처리된다고 한다.
지나치게 무리를 해서도 안되겠지만 사정이 허락되는 한도에서 자신의 정성을 모아 봉헌하려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