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당신 백성을 하느님이 광야에서 먹이셨듯이(탈출 16장), 예수님은 외딴 곳에서 이용 가능한 자원을 많게 하시고 그것을 분배하여 많은 군중을 충분하게 먹이신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20-21) 이와 같이 예수님의 행동은 폭군 파라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먹이신 하느님의 행동과 닮았다. 즉 예수님은 배고픈 이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신다.(시편 22,27 107,9 132,15 욥 22,5-11 이사 58,6-7 에제 18,5-9 34,2-3.8 집회 34,25-27 마태 5,6 6,11 12-1-8).
예수님은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고 양식을 정의롭게 재분배하신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개입은 현 상황(status quo)을 뒤집어엎는다. 하느님의 통치는 모든 이에게 풍족한 양식이 공급되는 것이다.(에제 34,25-31)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먹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의미하는 완전함과 온전함, 곧 샬롬을 선취하신다. 다시 말해 창조 세계를 충실히 돌보시고 기르심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미리 앞당겨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활동을 통해 안식일, 질병, 죄, 악령, 생명, 자연, 바다에 대한 주인 되심(lordship)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 식량 자원에 대한 주인 되심을 보여주신다.
군중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불의한 체제와 불공평한 식량 체계를 비판하신다. 예수님의 행동은 가난한 이들, 배고픈 이들의 희생으로 도시의 지배 엘리트들이 배불리 먹는 제국의 현 상황(status quo)에 대한 도전이며 식량 공급을 통제하고 악용하는 지배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다. 예수님은 배고픈 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양식의 가치와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나눔의 중요성을 보여주신다. 즉 그분은 하나의 대안적 체제(alternative system)를 제시하시고 실현하신다. 이 대안은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 관대함(generosity), 자원의 나눔, 충분함 등을 그 본질적 특성으로 가진다.
로마 제국의 체제와 예수님의 대안적 체제 사이의 분명한 대조는 복음서의 문맥(context) 안에서 잘 드러난다. 즉 사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마태 14,13-21 마르 6,30-44) 바로 앞에 위치한 본문은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잔치 이야기(마태 14,3-12 마르 6,17-29)이다. 헤로데의 생일잔치는 사치와 탐욕의 자리로서 지배 엘리트들만이 초대된 배타적이고 닫힌 연회였다. 헤로데와 지배 엘리트들의 부도덕한 행위와 조작은 결국 세례자 요한의 죽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반해 많은 군중을 먹이신 장면은 변두리로 내몰린 배고픈 이들이 초대된 포괄적이고 열린 자리였다. 예수님의 식사에서는 많은 군중이 포함되고 그들에게 풍족한 음식이 제공된다. 그리고 그 식사는 가난한 민중의 안녕(well-being)을 증진시키고 평등(equality)을 실현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것은 배고픈 이들이 하느님을 신뢰하고 배부르게 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하나의 은유적 이야기(metaphorical narrative)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왕국과 하느님의 나라 사이의 극명한 차이와 대조를 발견한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경제 정의(economic justice)와 사회 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요구이다. 그것은 착취와 폭력이 아닌 관대함과 나눔의 실천에로의 초대이다. 정의로운 양식의 재분배와 자원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고 사람들 사이의 경계들은 철폐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실현되는 대안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요구는 굶주리는 민중과 식량 체계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 일상적인 생활 방식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먹이시는 행동을 통해 로마 제국의 시장 경제에 대한 대안을 실천하셨다. 그것은 배고픈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는 새로운 창조, 다른 미래, 다른 세상, 딴 세상(another world)의 선취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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