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교리를 거듭할수록 하느님을 너무 늦게 찾아뵌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내 젊음을 다 바친 직장에서 은퇴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다 어느 틈엔가 환갑, 칠순이 다가올 것이고, 영락없는 할아버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죽음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뒤늦게 구원을 받겠다고 애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하느님께 어떻게 보일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세례성사를 받으면 나의 원죄와 본죄가 씻어진다는 가르침은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솔직히 그러한 은총이 욕심나서 예비신자교리에 더욱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스스로에게도 물어보곤 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 하느님을 늦게 알고 세례성사도 늦게 준비하고 있지만, 남들보다 몇 배의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감사드린다.
몇 주 전 예비신자교리반에서 단체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동행한 신자분이 순교를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직 천당’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더욱 놀라기도 했다. 세례성사가 아니어도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더욱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정말 순교를 하면 곧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일까? 그런데 요즘엔 순교할 일이 없지 않은가. 중동지역에서 종교간 대립으로 인해 유혈사태가 종종 일어나곤 하는데, 그 때 생명을 잃으면 그들이 정말 순교하는 것일까?
내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생소하게 느꼈던 것이 ‘순교’였다. 젊은 시절 개신교회도 잠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개신교회에서는 순교에 대한 가르침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톨릭교회도 조선시대 유교문화 때문에 박해를 받아 순교자가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또 순교는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이 자기들의 행동을 포장하면서 주로 쓰는 용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는 열망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한다. 특히 순교자의 모습은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확신을 지니고 죽음을 맞이하는 면에서 그리스도와 닮아있다고 했다.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 참여한다. 즉 순교는 실제로 죽임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게서 초래되어야 하며,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박해시대 때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중 성인 103명은 호칭기도를 통해 이름을 들어보긴 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일. 흔히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는 일이 인생에서 종종 있곤 했지만, 생명과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괴롭히는 모습을 사랑과 용서로 품어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세례성사를 받게 되면,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오늘부터 틈날 때마다 순교성인전기나 순교자에 관한 책을 읽어볼 계획이다. 이 시대, 나의 순교적 삶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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