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사람이 약이에요. 스무 살 먹은 젊은이가 가진 재주가 많다고 해도 팔순 어르신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어렵죠. 저라면 그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서 얘기도 하고 위로도 해드리고 있죠.”
매주 금요일 오후 김수평(바오로·70·광주대교구 나주본당)씨는 한 손에 계란, 다른 한 손에는 고급 카스텔라를 들고 말벗 봉사를 떠난다. 매주 지역신문에 투고하는 수필을 마감하고 가장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어르신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말벗봉사를 시작한지 6개월이 됐는데 어르신께서 저에게 많이 의지를 하세요. 같이 목욕탕도 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20년 넘게 홀로 삶을 살고 있는 김씨는 어르신이 느낄 외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부탁해 어르신과 같이 시내에 가서 이발을 하기도 하고, 어르신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동사무소에 이동목욕차량과 봉사자들을 요청하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가치 있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 말이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이라 말씀하시더군요. 진단 받고 죽을 궁리만 했어요. 췌장암은 정말 아프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죽을 궁리를 하던 김씨가 살 궁리를 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신문기사였다. 기초생활수급자 아주머니들이 각자 돈을 모아 고기를 사고 반찬거리를 만들어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한 김씨는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벗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신앙생활도 새롭게 시작해 지난 8월에 세례를 받았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지만 하느님에게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게 좋더라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가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기사로 읽고 선행을 시작했듯이 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쁘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