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조차 지키지 않는 법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진오비(gynob·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최안나(안나) 대변인은 단호하게 반문한다. 판사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법. 그러나 고치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 무책임하고 비겁한 사법 실태는 인간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낙태 합법화와 직결돼 더더욱 심각성을 드러낸다.
진오비는 최근 대전지방법원이 405명의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4명의 형벌을 면제해준데 대한 문제점을 알리고, 구체적인 법 개정 촉구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대전지법은 ‘사회분위기상 낙태가 용인되고 있다’는 것을 판결 이유로 내세웠다. 낙태에 관한 처벌에 대해 ‘합헌’이라고 밝힌 헌법재판소 결정까지도 거스르는 내용이다.
최 대변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법질서를 지키면서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겠느냐”며 “도리어 사법부가 낙태를 조장하는 현실이 돼 버렸다”고 지적한다.
“낙태와 관련한 불법광고를 버젓이 하고, 어떠한 상담 절차도 없이, 전국 어디에 있든 당일 낙태수술이 가능한 나라는 지구촌에서 대한민국밖에는 없습니다.”
대전지법 판결 이후 ‘처녀임신’ ‘임신수술’ 등 낙태를 암시하는 키워드 광고를 비롯해 ‘수술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365일 24시간 비밀 상담’, ‘중고생 환영’, ‘전화 주시면 전국 어디든 모시러 갑니다’, ‘금식하고 오면 당일 수술 가능’ 등의 광고 문구를 띄우는 ‘막장’ 산부인과들이 다시금 우후죽순 고개를 들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 대변인은 “낙태 근절 운동은 우선 의료계의 자정을 위해 더욱 필요하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환자나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본업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진오비는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경쟁적으로 낙태 환자를 유인하자, 2009년 범국민적인 낙태 근절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최 대변인도 대학병원에서 활동할 때와 달리 서울 명동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는 낙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처음엔 여성들이 낙태하지 않도록 낙태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강제 숙려기간도 줬지만, 점차 환자들을 괴롭히지 않고 돕는 행동이라며 낙태를 하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죽음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하던 때, 진오비 의사들을 만나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고.
진오비 의사들은 낙태하는 의사들을 법적으로 고발하며 온갖 비난을 감내했다. 돈을 최우선 가치로 선택하는 이들의 불법행위를 막고, 아기와 여성을 살리기 위해서,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었다.
몇몇 의사들은 진오비 산부인과도 함께 열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낙태 근절에 바쁜 나날이지만, 본연의 업무인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진료와 연구에도 매진한다. 의사로서의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병원 운영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최 대변인은 “낙태를 안 한다고 취직 자체가 안되는 산부인과 풍토를 없애고 프로라이프적 진료를 하면서도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의료 문화가 자리 잡길 기대하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최 대변인은 낙태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어, 법질서 안에서 낙태 예방 효과를 거두고, 법이 무력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무책임한 성문화, 임신·양육에 무책임한 남성들, 열악한 육아환경, 반생명적인 낙태에 무감한 의식, 게다가 그 와중에 돈을 벌겠다고 낙태는 물론 불법 광고에까지 열을 올리는 산부인과 의사들 안에서 여성들과 아기들은 함께 죽어간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려온 여성들은 글자그대로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할 ‘위기의 여성들’이라고 말한다.
“안전한 낙태란 없습니다. 낙태하는 어느 여성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느 의사도 낙태를 하기 위해 의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국민들이 낙태를 안 하고 살 수 있는 생명존중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 사법부도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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