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신자라면 꼭 한 번쯤 해야 하는, 또한 하고 싶은 신심 행위 일순위로 꼽힌다.
특히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풍요로운 순교영성과 관련 성지들을 품고 있다. 자연스럽게 순교성지 순례는 한국 신자들의 회심과 신앙쇄신의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본당, 단체 등에서는 정기적인 성지순례를 실시하고, 예비신자 교리 과정에서도 성지순례를 필수적인 활동으로 포함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변화에 발맞춰 전국 각 교구와 성지들도 기본적인 성지 조성은 물론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큰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한국교회 성지순례는 외적 성장에 비해 알맹이가 영글지 못했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어왔다. 성지순례 본연의 의미를 알고, 내 삶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더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를 계획할 때 장소만을 기준으로 일정을 짜고, 그 성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곳인지, 성지와 관련있는 성인 혹은 순교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 믿음을 본받아 내 삶에서는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묵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각 교구나 성지들이 순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순례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전문적인 성지순례지도자를 양성하려는 노력도 아직은 부족하다.
무조건 성지순례에 나선다고 해서 회심과 삶의 변화가 이뤄지진 않는다. 왜 가는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떠한 자세로 순례해야 하는지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면 도리어 내적 상처만 받고 돌아올 수 있다.
성지순례는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하나의 기도다. 각 성지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랐던 성인, 순교자들의 흔적을 돌아보고, 그 모범을 따라 내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영적 변화를 다짐하는 시간이다. 회개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하느님을 찾아가는 이 여정 안에서는 인간을 ‘늘 새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난다.
“하느님은 우리 행군의 끝이십니다. 우리는 육체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주님에게서 떨어져 순례하며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직접 보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성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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