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일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이 몽땅 ‘실패자’의 기록으로 읽힙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며 겪으셨을 하느님의 좌절감이 전이되는 느낌에다 복음에서도 자식 탓에 썩어 내린 부모의 심정을 엿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맘대로 폼 나게 살려던 포부가 꺾인 ‘작은 아들’의 초라한 행색도 실패자의 꼴이요 복음 전파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도 서글퍼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님께서는 스스로의 삶을 실패라고 여기는 우리, 마음이 꺾여 삶의 음지로 숨어들려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희망 법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이 실패라고 단정 짓는 삶일지라도 면면히 생동하고 있는 강한 하느님 손길을 바라보라는 당부라 듣습니다. 아담의 배반으로부터 시작되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인간의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당신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하느님 사랑을 기억하여 힘을 내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 시나이 산에 오른 모세가 감감 무소식이었을 때, 불안했을 것입니다. 민족의 리더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오른지 마흔 날이 지나도록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으니, 막막했을 것입니다. 민심은 술렁대고 지도자들의 마음도 좌불안석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두 손 놓고 기다리는 미련한 짓을 더 이상 할 수는 없다고 분연히 일어섰을 것입니다. “눈 뻔히 뜨고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함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겨낼 묘안을 궁리했을 것입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신중을 기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의논했을 것도 같습니다. 만장일치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자는 결론이 채택되었을 때, 자신들의 묘수와 지혜에 뿌듯했을 듯도 합니다(탈출 32,1-6 참조).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똘똘똘 한 마음으로 뭉쳤던 그들의 행위를 ‘타락’으로 규정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엄벌하시겠다며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십니다.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시며 민감하게 반응하시니, 뵙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어쩌면 그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일에 몹시나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모세의 등을 떠밀듯, “어서 내려가거라”고 명령하신 일이 의아합니다. 진심으로 당신의 표현처럼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들에게 실망하여 마음이 떠나셨다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할 작정이셨다면 굳이 모세를 그들에게 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는 “나를 말리지 마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속으로는 모세가 적극적으로 말려주기를 기대하셨던 것을 알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모든 사람을 되찾으시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죄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잃어버린 양처럼 애타게 찾으십니다. 제발사 죄에서 돌아서 귀환하기를 고대하십니다. 돌아온 자녀를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 반기십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죄를 전혀 짓지 않을 만큼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거룩한 삶이란 자기 죄를 점점 더 뼈저리게 깨달아 변화되는 삶입니다. 영적 성장은 죄에 관한 영안을 뜨게 하여 이전에는 죄라고 여기지 않던 것까지도 죄라는 걸 인식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과거에 죄인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온 삶을 복음 전파에 투신하고 있는 지금, 현재에 명백한 죄인이라고 밝힙니다. 영적 성숙의 진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지은 죄에 관하여 수천 번… 수만 번… “나를 말리지 마라”는 심판이 내려졌을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엄청난 선언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씻어 막아주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세상의 “첫째가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내 죄를 씻어 구원을 얻게 하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이에게도 똑같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감히 이 너른 아버지 사랑을 질투하여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못난이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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