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주님께서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지금의 삶의 자리로 이끌어주신 크나큰 은총과 늘 낮은 자세로 봉사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주교 집안인 사랑하는 아내 아녜스와 당시 신자가 아니었던 저는 결혼부터 신앙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처가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관면혼배를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아녜스는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성모상이나 십자가를 내놓고 기도할 수 없어서 늘 장롱 속에 숨겨두고 있다가 밤늦게 가족이 잠들었을 때 꺼내놓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아녜스의 기도와 어느 자매님의 지속적인 권면으로 입교하게 됐지만, 방탕한 생활 속에 물들었던 제가 하루아침에 열심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신성한 교회에서 신앙인처럼 흉내 내고 모범적인 가장처럼 보이려고 하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많은 교우들의 기도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저는 홀로 방황하며 술과 잡기를 좋아했고, 사업의 성장도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녜스는 저를 위해 기도하며 말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교회의 큰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아녜스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꾸료실료 교육에 들어갔을 때 아녜스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지난 세월, 아녜스의 서러움과 아픔이 장문의 편지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밤새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아녜스에게 너무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주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아녜스는 그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며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날은 제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교육 후 아녜스에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하나요?” 아녜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교회의 봉사자가 되십시오”라고. 그때부터 사회보다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교회 봉사자로서의 첫 소임은 산악회장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선교분과장, 본당 총무, 소공동체 회장을 거쳐 본당 총회장이라는 중책을 맞게 됐습니다. 교회의 봉사직을 수행하면서 겸손을 알게 됐고, 낮은 삶과 용서의 삶을 알게 됐으며, 주님의 은총 속에 새로운 가치관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보의 삶’입니다. 저는 봉사자를 임명할 때 다짐을 받습니다. “저와 함께 바보가 됩시다.” 교회에서 바보가 돼 하느님의 은총 속에 기쁘게 봉사하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저는 오늘도 바보로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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