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더 호화롭고 더 빠르고 더 편리하며 더 좋은 것을 향해서 질주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잘 산다’는 말의 의미는 훼손되고 손상된 지 오래입니다. 삶의 품위가 소위 ‘명품’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며 넓은 집과 큰 차를 가지면 삶의 품격이 높아지는 양 곡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최대 존재 가치로 숭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청률의 노예, 코스닥 지수의 노예, 돈의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불어난 세상에서 주님께서 쏟아 주시는 생명의 축복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죄다 종살이를 하는 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말씀이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꿈의 방향을 점검하라는 묵직한 권고로 읽힙니다. 주님께서는 부자와 거지의 극렬한 삶의 대비를 들려주시며 뚜렷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허망하고 민망한 꿈에서 어서 깨어날 것을 권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설사 문밖에 누워 구걸하는 가엾은 이를 무시한 적이 없다거나, 상처받아 고통당하는 이웃을 동정하여 잠깐 연민을 품었다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당부로 들립니다. 자신의 삶이 주님 앞에서 “어떤 부자”와 차별화될 수 있을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는 일깨움을 새기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는” 그 두려운 곳에 가지 않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먹고 입는 일에 매달려 살아가는 인간을 위선자 혹은 이방인으로 구분하셨습니다. 의식주에 골몰하여 살아간다면 당신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다고 냉정히 말씀하십니다. 오직 잘 먹고 잘 입는 세속의 복만을 추구할 때에 그날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마태 25,12)라는 판결을 들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누이 하느님의 뜻을 살아내기 위해서,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 당신의 말씀에 조준하여 살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지혜의 부자가 되어 말씀을 사색하고 사유하는 상념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양가 있는 말씀의 양식을 섭취하지 않습니다. 진리에 허기진 마음을 이런 저런 세상의 불량식품을 탐닉하며 달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문일까요? 믿음조차 올바른 믿음과 가짜 믿음으로 구별됩니다. 사랑조차 참사랑과 입에 발린 사랑을 구분합니다. 사랑도 믿음도 한 꺼풀 벗겨봐야 실체가 드러납니다. 난감하고 우울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꿈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꿈은 삶의 무게를 변화시킵니다. 앞날을 위하여 스스로의 꿈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꿈이 허황되거나 부질없다면 삶을 망가뜨립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특별한 재주가 필요치 않습니다. 하늘의 것을 위하여 살아가는 천국시민의 자격은 돈으로 구입할 수 없습니다. 나자로처럼 “종기투성이 몸”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부자를 원망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 순수한 마음만이 천국을 누리게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아낌없이 전해야 할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손에 가득, 이웃에게 나누어 선물할 축복의 복권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 복권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걱정 없이 사는 자”가 되어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지내는 삶과도 동떨어집니다.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바르며 흥청거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치유하여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카드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능력을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일구고 살아가는 모습에 참 ‘잘 사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깊이 있는 영적독서로 기진한 영혼을 회복시키는 건강한 믿음인이 되기 바랍니다. 당신께서 채워주신 갖은 축복에 찬미드림으로 귀한 생명력을 가득 충전 받는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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