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익어가는 논밭과 탐스럽게 여무는 과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는 도시건만 그래도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옥상텃밭의 수확이 반드시 가을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무더운 여름에 비하면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 늘어날 뿐 아니라 ‘추수의 계절’의 이미지가 더해서 수확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작물을 따기만 하면 되는데 수확이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지만 초심자인 기자는 그 쉬운 수확에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두면 더 큰 오이를 얻을 수 있겠거니 했던 오이가 잠시 잊고 지내는 사이에 노각이 돼버린 것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이였는데! 노각도 노각대로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오이를 기대했던 기자에겐 안타까운 일이었다. 욕심이 화를 자초했다. 초록빛 오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시장에서 봐오던 작물의 모습만을 상상하고 욕심을 부리다간 작은 작물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작물에 따라 수확하시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 심을 때부터 수확시기를 미리 확인해 두라는 선배 도시농부들의 조언을 명심했어야 했다.
기자의 경우엔 오이가 노각이 되는 정도에 그쳤지만 욕심이 수확을 망치는 경우는 이밖에도 많이 있다. 더 많은 작물을 얻으려는 심산으로 솎아주기에 소홀하면 얻을 수 있을 작물마저 얻지 못하는 불상사를 당할 수 있다. 딸기와 같이 단내가 나는 열매나 배추처럼 애벌레들의 주식이 되는 작물들은 더 큰 작물을 얻으려고 수확을 너무 늦추면 벌레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주변에 수풀이 적은 도시의 환경 상 인근 벌레들이 옥상텃밭으로 모이기 쉽기 때문에 수확시기에는 벌레방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기본적으로 작물이 적당히 자라 수확시기가 됐다면 수확해도 좋지만 이때 조심해야 할 점도 몇 가지 있다. 비가 오는 날 수확은 피해야 한다. 수확은 식물의 입장에서는 상처가 생기는 일이다. 우천 시 수확은 수확으로 상처가 생긴 곳에 빗물을 타고 병원균이 식물 내부로 유입될 수도 있다. 반대로 햇볕이 너무 강한 날에는 작물의 수분량이 적어 작물 상태가 수확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염두에 두면 좋다. 작물이 잘 자라도록 뿌리는 액비(액체비료)나 벌레를 방지하기 위해 뿌리는 목초액 등은 수확 전에는 뿌리지 않는 것이 깨끗한 작물을 얻는 길이다.
단순하게만 여겼던 수확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기도 하다. 꼭 우리 자신 같다. 끊임없이 관심과 정성으로 돌봐야 하는 옥상텃밭 작물을 수확하면서 마지막 날의 수확을 기다리는 우리도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보고 하느님 뜻대로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묵상을 하게 된다.
또 이 작은 텃밭에서 이 작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알게 모르게 받은 하느님의 관심과 정성이 얼마나 큰가도 느끼게 된다.
이번에는 옥상텃밭에서 가지를 수확해봤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는 작고 모양도 썩 예쁘진 않았지만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이 가지가 유기농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보장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이 가지에는 정성이 담겨있다. 수확한 가지로 가지볶음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었다. 키우고 수확하고 요리하기까지 자신의 정성이 가득 담긴 가지볶음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가지볶음이 아닐까.
※도움 주신 단체 :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소년문화사목부,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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