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서류가방과 지팡이는 임인덕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사진)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메일로 홍보자료를 보내도 되는 시대지만 임 신부는 항상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베네딕도미디어 작품들을 소개했다. 1987년 교통사고 후 걸음을 딛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좋은 영화는 사람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는 일념 하나로 육신의 고통마저도 견뎠다.
40여 년 동안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영상 매체를 한국에 소개해 온 임인덕 신부가 13일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78세. “몸 상태가 호전되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했던 나라, ‘한국’에 대한 애틋함이 전해진다.
임인덕 신부의 미디어 사목은 출판, 영상 등 장르를 망라한다. 분도출판사 사장으로 재직한 1972년부터 1993년까지 총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무계획하고 즉흥적인 출판은 지양하고, 사회정의와 건전한 사회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각종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세계 평화와 사회정의에 배치되는 후진국의 경제개발과 환경 문제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은 「성난 70년대」를 사장 부임 직후 출간해 분도출판사의 출판 방향을 제시했다.
임 신부는 출판 미디어뿐 아니라 영상 매체에도 열정을 쏟아냈다. 영상 매체의 중요성을 크게 인지한 그는 1969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 마오로 기숙사 사감 시절, ‘시청각 종교교육 연구회’를 구성해 학생들을 참여시켰으며, 시청각실을 마련해 각종 종교 교육을 위한 슬라이드와 사진, 영상물 제작을 시작했다. 1994년에는 베네딕도미디어를 담당하면서 영상 매체를 제작, 보급하는데 집중했다. 원작 선정부터 번역, 더빙, 자막, 디자인, 홍보, 유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직접 소화했다. 그렇게 한국에 보급한 작품들은 러시아 영화철학자이자 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거울’과 ‘잠입자’, 폴란드 출신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십계’ 등 영화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잘 팔리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좋은 가치관을 만드는 영상 매체를 내놓겠다는 임 신부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돼 지난 2005년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임인덕 신부는 1955년 입회, 10년 후 사제품을 받았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사제수품 이듬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젊은이들과 우정을 쌓았던 그는 ‘우니타스’라는 모임을 만들어 토요일마다 야학을 열었으며, 성적은 우수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힘들어하는 농촌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 제도를 마련, 한국의 인재들을 발굴하는데 힘썼다. 임 신부의 한국 이름에도 깊은 한국 사랑이 묻어난다. 독일어 이름인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Heinrich Sebastian Rhotler)에 나무의 의미가 들어 있어 성은 수풀 림(林)으로 정했다. 또 한국인 정서에 영향을 준 유교와 불교의 가르침에서 ‘인’(仁)과 ‘덕’(德)을 따서 이름자로 삼은 것이다.
임인덕 신부의 장례미사는 16일 오후 9시(독일 현지시간 오후 2시)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봉헌됐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14일 오전 6시30분 장례미사를 거행했으며, 오는 31일 오전 10시30분 수도원 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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